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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환의 역사이야기 [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 나주 곰탕과 나주 배, 영산포 홍어

인주백작 2021. 1. 26. 06:44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 나주 곰탕과 나주 배, 영산포 홍어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으로 하늘의 기운을 나타내는 열 가지 중에서 천간(天干)은 ‘신’이고,

땅의 기운을 나타내는 열두 가지 중에서 지지(地支)는 ‘축’인 하얀 소의 해이다.

300년 전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20대 경종의 재위 시절, 숙종과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 문제를 두고 소론과 노론이 충돌하여 사화가 일어났다. 1721년 신축년부터 1722년

임인년까지 전개되어 신임사화라고 한다.

1018년 고려 현종 때 나주목이 설치됐고 1589년 선조 때 기축옥사와 1755년 영조 때 나주괘서

사건으로 호남의 유림들이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1895년 고종 때 전국을 23부제로 개편하고

나주목을 나주관찰부로 개칭했다. 1896년 의병장 기우만이 백성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던 참서관

안종수(安宗洙)를 처단했다. 23부제를 13도제로 개편하고 전라남도 관찰부를 1000년 목사골

나주에서 광주로 옮겨갔다.

나주(羅州)는 담양에서 발원한 영산강에 장성에서 시작한 황룡강, 무등산에서 시작하는 광주천,

화순에서 시작한 드들강 등이 합수하여 전남 최고의 곡창지대인 나주평야를 적시고 서남해안으로

흘러간다. 나주는 예부터 쌀, 면화, 누에고추가 많이 생산되어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흥선대원군은 전국을 유람하며 세금을 혹독하게 거둬들이는 곳은 나주만 한 곳이 없다면서 ‘결불여

나주(結不如 羅州)’라고 하였다.

전주와 나주 첫 자 따 ‘전라도’ 명명

나주는 평야가 넓어 소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나주에는 쇠고기가 많아 쇠고기를 넣고 푹 고아서

국물을 낸 나주곰탕이 임금님 수라상인 12첩 반상에 올라갔다. 곰탕은 밥에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는

토렴을 하여 따스하게 먹었다. 곰탕은 고기를 많이 넣고 끓여 국물이 맑지만, 설렁탕은 뼈째로 넣어 끓여

국물이 뽀얗다. 곰탕과 설렁탕은 일제 강점기에 소 사육 정책으로 널리 보급됐다.

나주는 구릉이 많고 일교차가 크지 않고 영산강변에 위치하여 수량이 풍부하고 습한 토양이라 배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 배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주의 토공물로 기록됐고 일제 강점기에 나주에서 배를

전문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배는 제수용과 가공품으로 많이 쓰이며 비타민이 풍부하여 감기 예방에

탁월하다. 사과와 더불어 한국인이 즐겨 먹는 과일이다. 나주에는 세계 유일의 배전문 박물관이 있다.

영산포(榮山浦)는 전라도 나주시에 있었던 옛 항구로 고려 초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산창이 설치되어

전세를 운반하는 조창으로 발전했다. 목포항이 개항되자 동력선이 출항하며 크게 번성했고 영산강 하굿

둑이 건설되자 항구의 기능이 상실됐다. 영산포는 오랫동안 나주목에 속했으며 1927년 나주군 영산포읍

으로 승격했다. 1981년 나주시와 영산포읍을 통합하여 금성시가 되었다가 1986년 나주시로 변경됐다.

곰탕·배·홍어… 천년 목사골 나주

흑산도(黑山島)에 왜구가 침범하자 주민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이 펼쳐졌다.

흑산도 주민들은 뱃길로 390리 떨어진 영산포로 들어와서 영산포에 삭힌 홍어가 유명하게 되었다.

흑산도는 최서남단에 있는 섬으로 바닷물이 푸르다 못해 검다 해서 흑산도라고 부른다. 홍어는 가오릿과

바닷물고기로 마름모꼴로 생겼다. 1코, 2애, 3날개이며 톡 쏘는 독특한 맛이 일품이다.

나주읍성(羅州邑城)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고려 때 쌓은 성을 세종 때 확장했다. 4개의 성문은 일제

강점기에 철훼됐고 최근 복원했다. 나주 금성관(羅州 錦城館)은 조선 성종 때 나주목사 이유인이 창건한

나주목의 관아로 2019년 대한민국의 보물 제2037호로 승격됐다. 나주역은 1913년 개통된 호남선 철도

역으로 일제 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받는 광주학생 독립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나주는 천년 목사골로 고려 2대 혜종의 생모인 장화왕후, 고려말의 명장 정지, 청백리이자 영의정을 지낸

사암 박순, 거북선을 제작한 나대용, 임진왜란 당시 호남 최초의 의병장 김천일, 천재 시인 백호 임제,

노비에서 부원수까지 승진한 정충신 등의 고향이다. 또한 조선 최고의 변절자 신숙주와 기생 출신으로

세도정치를 자행한 나합부인 양씨가 태어난 곳이다. 나주는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서일환 언론학박사·첨단재활요양병원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