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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실력 드러낸 'GSOMIA 파동' [기자메모]

인주백작 2019. 11. 26. 06:25

경향신문

한국 외교실력 드러낸 'GSOMIA 파동' [기자메모]

유신모 | 정치부 입력 2019.11.24. 22:08 수정 2019.11.24. 23:34


[경향신문] 



지난 넉 달 동안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동’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실력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태의 전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를 소홀히 다루다가 한·일 갈등에

미국까지 끌어들이는 자충수를 둔 끝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사태의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는 여전히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 협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논란을 벌이는 것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대일 카드로 이 협정을 종료시키고

미국을 판에 끌어들인 것이 전략적으로 맞는 선택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본질이다. 지난 8월 청와대가 이 협정을

종료하면서 “미국도 이해하고 있다”거나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라고 브리핑한 것을 지금 돌이켜보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정세판단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지난 22일 한·일이 막판에 합의한 내용은 ‘한국은 GSOMIA 종료를 중단하고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를 풀기 위한

논의를 한국과 시작한다’는 게 골자다. 정부는 복잡하고 장황한 설명을 곁들여 ‘외교성과’를 애써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일본이 수출관리정책 대화에 나선 것은 달라진 변화다. 하지만 그 대화를 백날 해본들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를

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마련해야 풀린다. 한·일 정책 대화는 강제징용

문제를 풀기 위한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청와대는 수출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GSOMIA를 다시 종료시킬 수 있는 견제장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런가. 정말 청와대가 GSOMIA 종료 카드를 다시 꺼낼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

 

청와대가 GSOMIA 종료를 중단시킨 것은 일본이 태도 변화를 보여서가 아니라 미국이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거친 방식으로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외교적 희생을 치르고 간신히 빠져나온 ‘GSOMIA의 협곡’으로 여차하

면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호언을 믿을 사람은 없다. 이번 합의는 정부가 한·일 GSOMIA 종료 조치를 없던 일로 하고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풀기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강제징용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강제징용 문제가 갖고 있는 폭발력을 정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벌어지지 않

았을 일이다.

 

한·일 GSOMIA 파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이라는 거대한 벽을 또 넘어야 한다. 이번에도 청와대

가 호언해왔던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 우선 청와대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법원 판결에 행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고 스스로 퇴로를 차단한 것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 이 사람들에게 더 이상 국가 안보를 맡길 수는 없다.

 

유신모 | 정치부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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