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일본에게 사형을 선고 받은날"

인주백작 2020. 2. 13. 14:00

역사이야기

2월14일 오늘의역사,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일본에게 사형을 선고 받은날"입니다.


2월14일!
누구나 설레는 날입니다.
심지어 연인이 없는 사람 조차도 설레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역사는 그리 설래이지는 않네요.
1910년 2월 14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에게 일본 법정이 사형을 선고한 날입니다.

안중근은 대한제국의 항일의병장이기도 하고 정치사상가이기도 합니다.
동학혁명당시 그의 아버지는 동학군을 정벌하는데 참여하기도 하고 대한제국 말기에는 학교설립과 교육운동
국채보상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안중근의 유년 시절은 넉넉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안중근의 아명은 응칠인데요, 태어날때부터 등에 점 일곱개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북두칠성의 기운을 타고 났다
하여 응칠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한때 김구가 동학운동에 참여할 당시 잠깐동안 안중근의 아버지가 보호한 적이 있는데 안중근과 친하지는 않았
던듯 합니다.

안중근의 사상은 동양평화론으로 동양의 한중일이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평화를 이룩하자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안중근은 국채보상운동도 진행하지만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고 맙니다.

1909년 안중근은 뜻을 같이하는 11인과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의병을 재기하기 위해 너력하였습니다.
이때 왼손 네째 손가락을 단지하여 경의를 다졌습니다. 이때뷰터 안중근의 수인이 등장하게 됩니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히로부미가 하얼빈역으로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 우덕순, 조도순, 우동하와 함께
하얼빈역에 도착합니다.
안중근은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제국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일본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 받습니다.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죽이고 사형을 선도 받았을때 어머니가 보내신 편지역시 감동입니다.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입니다.

"네가 만약 늙은 머미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른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곳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른즉 딴 맘 먹지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의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편지가 이어미가 네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 수의를 비어 보내니 이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세상에 나오거라"

어머니의 마음이 읽혀지는듯 합니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쓰다만 동양평화론은 중국, 일본, 조선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는 15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라고 기분좋은 데이트에 대한 생각 옆에 조그맣게 안중근의사와
우리의 독립운동가들도 기억해 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