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고사성어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보응우얜잡

인주백작 2022. 9. 25. 19:42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보응우옌잡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으며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았으며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

보응우옌잡은 1961년 프랑스에 승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민의 전쟁, 인민의 군대'를 집필하여 '3불정책'을 소개했다 보응우옌잡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꽝빈성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성장한 성리학자이다

보응우옌잡은 프랑스에 유학가서 학생시위를 주도하여 퇴학을 당하여 귀국했다 베트남청년혁명당에 가입했고 학생파업을 지지하여 프랑스 경찰에 체포됐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도피했고 부인은 종신형을, 처제는 처형됐다

보응우옌잡은 중국 윈난육군강무학교에 입학하여 군사전략을 배웠고 호찌민과 함께 베트남 독립동맹회를 조직했다 베트남은 일본군에 이어 프랑스군과 게릴라전을 하였고 미국은 일본에 승리하기 위해 베트남 독립동맹회를 지원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 공화국 건국을 선포하자 프랑스가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프랑스가 하이퐁에 이어 하노이에 입성하자 게릴라전을 통해 후방에서 프랑스군을 교란작전을 벌였다

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미군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였다 1953년 프랑스군은 라오스와 국경지대에 있는 디엔비엔푸에 최정예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방어기지를 만들었다

1954년 3월 13일 보응우옌잡은 프랑스의 디엔비엔푸 요새를 공격하여 프랑스 군대를 물리쳤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항복으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승리하여 80년 만에 프랑스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됐다

1954년 제네바협정으로 북위 17도선을 따라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미국은 고딘디엠을 앞세워 남베트남공화국을 수립하여 북베트남과 대립했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북베트남민주공화국은 1975년 4월 30일에 미국, 베트남공화국을 물리쳤다 무력으로 남북통일을 이룩하여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했다 베트남 전쟁을 2차 인도차이나 전쟁 또는 월남전(越南戰) 이라 한다

보응우옌잡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부수상, 국방부장관, 북베트남군 참모총장을 겸임했다 2013년 향년 102세로 사망하자 베트남 정부는 국장(國葬)을 거행했다 보응우옌잡의 '3불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보응우옌잡 #베트남








느낌150
댓글21
공유
능주목(綾州牧)으로 승격했다. 1895년 전국을 23부제로 개편하자 나주부 관할 능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국을 13도제로 환원되자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편입됐다. 1914년 능주군과 화순군이 통합되어 화순군이 되었다. 능주목, 13도제로 개편되어 화순군으로 편입 화순군(和順郡)은 전라남도 중앙부에 있는 군으로 1읍 12면에 6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1963년 화순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2020년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북면을 백아면, 남면을 사평면으로 개칭했다. 국립공원 무등산이 솟아있고 영산강과 섬진강의 지류가 흐른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화순적벽(和順赤壁)은 명승 제112호로 지정됐다. 조광조(趙光祖)는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김굉필에게 수학하여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성리학적 도학정치를 구현하려 소격서 폐지와 위훈삭제 등을 주창했다. 조광조는 훈구파들이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전라도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37세에 사사됐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됐고 문묘(文廟)에 종사됐다. 조광조는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한국의 조류특집 / 10 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 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떴다 봐랄 저 종달새 석양은 늘어져 갈매기 울고 능수버들 가지 휘늘어 잔디 꾀꼬리는 짝을 지어 이 산으로 가면 꾀꼬리 수리루 음 음~ 어 허야 에 에야 뒤 여 허 둥 가 허 허 둥 가 내 사랑이로구나 예부터 전해오는 민요 '남원산성'의 한 대목이다 수진이는 사냥에 쓰려고 길들인 매이고 날진이는 길들이지 않은 매이다 해동청은 참매를 말하며 송골매라고 한다 보라매는 아직 털갈이를 하지 않은 까닭에 보랏빛을 띠는 어린 매를 말한다 매(鶻)는 남극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 분포하는 맹금류로 한국에서는 절벽에서 서식하는 텃새이다 매 황조롱이 나그네새 등은 매과 조류이며 참매 독수리 솔개 등은 수리과 조류이다 강경파를 매파라고 하고 온건파를 비둘기파라고 한다 매는 천연기념물 제323-7호이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매는 시력이 좋고 시속 390km로 급강하를 하고 정지비행을 하여 뾰족하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있어 예부터 매사냥이 전해진다 고려 때는 매를 훈련시켜 날짐승과 길짐승의 사냥을 담당하는 응방(鷹坊)이 설치됐고 조선 때는 내응방(內鷹坊)이 설치됐다 매사냥은 한국 몽골 포르투갈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등 11개 나라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참매는 수리목 수리과에 속하는 수리매의 일종이며 북반구에만 서식하며 한국에는 희귀하게 찾아오는 겨울 철새이다 어린 참매를 보라매라고 한다 가을에 와서 봄에 돌아가며 예로부터 대표적인 사냥매이다 천연기념물 제323-1호로 지정됐다 독수리는 수리목 수리과에 속하는 행동이 둔하여 사냥을 하지 못하여 썩은 고기나 병든 짐승을 먹어 청소부' 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한국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며 천연기념물 제243-1호 및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2 위나라 '조식') 조조는 난세의 간웅(奸雄)으로 평가받는 후한의 마지막 승상이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로부터 위왕(魏王)에 봉해졌다 한나라는 한고조 유방(劉邦)과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은 왕(王)이 될 수 없으나 조조만 위왕이 되었다 조조는 9명의 부인으로부터 아들 25명과 딸 6명을 낳았다 정실 정씨가 요절하자 측실 변씨가 정실이 되었다 정씨가 낳은 조앙과 조삭이 변씨의 양자로 입적했으나 요절했다 조조는 변씨와 사이에 조비 조창 조식 조웅 등을 낳았고 측실 환씨가 낳은 조충을 후계자로 생각했으나 조충이 요절했다 조조는 조비를 왕세자에 책봉했고 두 명의 딸을 헌제에 시집보내 황제의 장인이 되었다 조비(曹丕)는 조조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죽음으로 위왕의 자리를 승계했다 조비는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로부터 강제로 양위를 받아 위나라의 초대 황제로 즉위했다 조비가 원소의 며느리를 약탈하여 첩으로 삼아 낳은 조예(曹叡)가 2대 황제로 승계했다 콩을 삶아 콩국 끓이네(煮豆燃豆萁) 콩물을 걸러 즙을 만드네(漉菽以為汁) 콩깍지는 솥 아래 타고 있고(萁在釜下然)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豆在釜中泣)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本自同根生) 서로 지지기가 어찌 이리 급한가(相煎何太急) 조식(曹植)은 조조의 아들이며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의 동생이다 조조가 조식에게 출동 명령을 하였으나 조비가 조식에게 술을 취하게 하여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여 후계자에서 멀어졌다 조비가 장자 계승 원칙에 따라 황제로 즉위하여 조식을 죽이기 위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어 읊으라고 하였다 조식은 7보의시(七步之詩)를 읇자 목숨을 살려주었으나 박해를 계속했다 조식은 황위를 놓고 형 조비와 경쟁하다가 패배했다 조비에 이어 조예가 황위에 올라 숙부인 조식을 대를 이어 핍박했다 조식은 황도를 벗어나 시골에서 생활하며 좌절과 불행을 주제로 많은 시를 남겼다 조예(曹叡)는 위나라의 2대 황제로 조조의 손자이자 조비의 아들이다 아버지 조비가 어머니 견씨를 살해하자 오로지 독서에만 몰두했다 조비의 고명에 따라 2대 황제로 즉위하여 어머니 견씨를 문소황후로 추존했다 보지 못했는가, 울타리의 참새들 새매 보고 스스로 그물에 걸리는 것을 그물 친 사람 새 얻고 좋아하나 소년은 새보고 슬퍼하나니 칼을 뽑아 그물을 끊어주니 참새는 자유로이 훨훨 날아간다 훨훨 푸른 하늘에 닿아 내려와 소년에게 감사하는구나 *조식이 남긴 야전황작행 / 野田黃雀行 으로 자신의 현실을 들판의 참새에 비유한 시조이다 콩은 콩나물이 되기도 하고 콩나무가 되기도 하고 두부가 되기도 하고 된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콩국수 콩반찬 콩가루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 될까?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위나라 #조식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사색당론) 을해당론은 1575년 선조가 을해년에 표방한 당론을 말한다 당쟁의 조짐이 일어나자 이이가 주도하여 이조전랑으로 추천되어 당쟁의 발단이 계가가 된 서인인 심의겸과 동인인 김효원을 지방관으로 파견했다 김효원이 이조전랑에 추천되자 심효원이 '김효원은 윤원형의 문객이다' 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다시 심효원의 동생 심충겸 이조전랑에 추천되자 김효원이 '심충겸은 인순왕후의 외척이다' 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김효원이 한양 동쪽 건천동에 살아 동인이라 하며 이황을 중심으로 영남학파가 다수였다 심효원이 한양 서쪽 정릉방에 살아 서인이라 하여 이이를 중심으로 하는 기호학파가 다수였다 이조전랑은 정5품 정랑과 정6품 좌랑을 이르는 말이다 을해당론은 송나라의 구양수의 붕당론에 기초하여 추진했다 하지만 조선은 사상적 당쟁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을 중심으로 붕당이 정착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인과 동인으로 서인은 소론과 노론으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했다 선조 때는 서인과 동인이 대립하다가 기축옥사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광해군 때는 북인과 남인이 대립했다 인조 때는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고 효종 때부터 숙종 때까지 서인 정권과 남인 정권이 교체를 반복했다 소론의 지지를 받고 즉위한 경종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자 노론의 지지를 받은 영조가 즉위하여 탕평책을 추진했다 탕평책은 당파 싸움을 막기 위해 당파 간의 세력 균형을 위해 추진한 정책이다 영조는 소론과 남인을 탄압하고 노론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정조 때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두고 시파와 벽파가 대립했다 정조가 사망하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조선은 파국의 길로 접어 들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사색당론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한국의 조류특집 / 5 소쩍새) 이조년은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라고 자규를 노래했다 단종은 '두견이 소리 끊긴 새벽 멧부리에 달빛 밝고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지는 꽃이 붉구나' 라고 두견이를 노래했다 김소월은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라고 접동새를 노래했다 서정주는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라고 소쩍새를 노래했다 예부터 시인들은 자규 두견이 접동새를 소쩍새와 동일한 새로 혼동되어 사용했다 구슬프게 운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자규와 두견이는 탁란을 하는 같은 새이고 접동새와 소쩍새는 맹금류로 같은 새이다 자규와 두견새는 두견이과로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晝行性) 조류이고 뻐꾸기 까마귀 등과 함께 낮에 운다 소쩍새와 접동새는 올빼미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夜行性) 조류이고 올빼미 부엉이 등과 더불어 밤에 운다 소쩍새의 이름은 특유의 울음소리에서 유래했고 평안도에서는 소쩍새를 접동새라고 한다 소쩍새는 나뭇가지나 나무구멍에 집을 짓고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옛날에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살았다 밥을 적게 주기 위해 작은 솥에 밥을 짓게 며느리를 굶어 죽었다 며느리는 죽어서 '솥이 적다 솥이 적다 소쩍 소쩍' 하고 서럽게 운다고 전한다 소쩍새는 날이 어두워지면 '소쩍 소쩍' 또는 '솟쩍다 소쩍다' 하고 운다 예로부터 '소쩍 소쩍' 하고 울면 흉년이 들고 '솟적다 소쩍다' 하고 울면 풍년이 온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한국의조류특집 #소쩍새

(서일환의 역사 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1 초나라 '굴원') 초나라는 제나라와 합종을 맺었다 진나라가 뇌물과 미녀로 유혹하자 초나라는 제나라와 친교를 끊고 진나라와 친교를 맺었다 제나라는 한나라 위나라와 합종하여 초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가 초나라의 태자를 인질로 삼고 공격하자 제나라 한나라 위나라 3국은 후퇴했다 초나라 태자가 진나라에서 탈출하여 귀국했다 진나라가 역으로 제나라 한나라 위나라 3국과 친교를 맺고 고립무원의 초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는 태자를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다시 친교를 맺었다 진나라 소양왕이 배신을 일삼는 초나라 회왕과 회견을 요청했다 회왕은 굴원(屈原)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내 아들 자란(子蘭)의 요청으로 진나라에 갔다가 억류됐다 초나라는 회왕은 진나라에, 태자는 제나라에 억류되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제나라의 계략으로 태자는 귀국하여 경양왕(頃襄王)으로 즉위했다 초나라 회왕은 진나라에서 탈출하다가 붙잡혀서 병사했다 초나라 경양왕은 아우 자란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굴원은 초나라 회왕을 진나라로 보낸 자란을 미워했다 자란은 경양왕에게 굴원을 참소하여 강남으로 추방했다 노래 끝에 이르기를 나라에 사람 없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어찌 또 고향을 그리워하랴? 아름다운 정치를 함께 할 수 없으니 이제 나는 팽함(彭咸)이 사는 곳으로 가련다. *굴원이 남긴 시 '이소(離騷)'의 마지막 장이다 굴원은 초나라 회왕을 그리워하며 '이소'를 남기고 돌맹이를 몸에 안고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했다 굴원이 사망하고 얼마 후 진나라 진시황은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을 통일했다 항량이 초나라 회왕의 후손을 초의제(楚義帝)로 옹립했다 초의제는 진시황제 진이세황제에 이어 중국에서 세 번째로 황제가 되었다 항량이 사망하자 항우가 초의제를 섭정했다 항우가 초의제를 살해하자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정벌했다 초한전쟁에서 유방이 승리하여 중국은 재통일됐다 김종직이 초나라 항우에게 살해당한 초의제를 수양대군에게 살해당한 단종에 비유하여 추모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남겼다 김일손이 조의제문을 성종실록 사초에 실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일으켜서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김일손은 처형됐다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에 가서 물고기 뱃 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하니 어부는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 부르면서 떠나갔다. 곧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하고 마침내 떠나가 다시 함께 이야기하지 못했다 *굴원이 남긴 '어부사(漁父辭)'의 일부이다 굴원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이자 위대한 시인이며 불운한 정치가이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굴원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4 당나라 '설도') 춘망사(春望詞) / 설도(薛濤) 꽃 피어도 함께 즐길 리 없고 꽃 져도 함께 슬퍼할 리 없네. 묻노니 그대는 어디 계신고, 꽃 피고 꽃 질 때에 풀을 뜯어 한마음으로 맺어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봄날의 시름 그렇게 끊어 버렸건만 봄새가 다시 슬피우네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 가네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 나뭇가지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눈물이 주르르 아침 거울에 떨어지네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당나라의 여류시인 설도(薛濤)가 11살 연하의 시인 원진(元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인생은 덧없이 흘러가지만 만날 수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설도는 원진을 사랑하여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설도는 장안에서 태어나서 아버지를 따라 촉나라의 수도였던 성도(成都)로 옮겼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음률에 능통하여 8세에 시를 지었다 설도는 14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16세에 기녀가 되었다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위고(韋皐)가 설도의 재능을 평가하여 황제에게 비서성(秘書省)의 교서랑(校書郞) 직을 주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인들은 설도를 설교서(薛校書) 라고 불렸다 설도는 백거이 두목 유우석 원진 등 시인들과 교우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1945년 설도의 '춘망사' 3연을 김억이 번역했다 김성태가 작곡하여 권혜경이 가곡 '동심초(同心草)'를 불렀다 동심초는 이별이 아니라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는 사랑의 굳은 약속이다 김억은 천재시인 김소월의 스승이고 권혜경은 가요 '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이다 이별은 슬프지만 시는 아름답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당나라 #설도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한국의 조류특집 / 6 딱따구리) 탁목행(啄木行) / 신흠(申欽) 펄펄 나는 한 마리 새 타고난 모습 또한 저리 곱다네 날개 옷 찬란하게 환히 빛나니 오색 채단 곱게 짜 빛을 발하듯 ~ 하늘 도는 서로서로 빼앗음 있어 기대고 숨음이 어이 일정하리오 총알이 어이 너를 용서하겠나 사물을 해치고는 오래 못 가리 상촌 신흠은 좋은 나무에 구멍을 뚫어 목재로 쓰지 못하게 하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오색딱따구리를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벼슬아치로 비유했다 신흠은 조선 중기 4대 문장가의 한 명으로 영의정을 역임한 문신이자 시인이다 딱따구리는 딱따구릿과에 속한 새들의 총칭으로 크기는 참새와 비둘기 중간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삼나무 참나무 등 교목의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텃새이며 날카롭고 단단한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크낙새는 우리나라 토종이다 딱따구리는 초당 15회 정도의 매우 빠른 속도로 나무에 구멍을 뚫어 벌레나 곤충을 잡아먹거나 둥지를 만든다고 나무 속에 있는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나무에 도움이 된다고 뇌와 머리뼈 사이에 스펀지 같은 특수 충격 흡수장치가 있어 충격을 방어한다 크낙새는 딱따구릿과에 속하는 텃새로 이름은 우는 소리가 '클락 클락'해서 유래했고 클락새라고 한다 크낙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아종으로 천연기념물 제197호로 지정됐고 광릉의 크낙새 서식지도 천연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됐다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뚫는데 앞집의 멍텅구리는 있는 구멍도 못 뚫네 에헤야 가다 못가면 에헤야 쉬었다가세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진도 아리랑'의 한 대목으로 조혼(早婚)으로 인한 풍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혼은 여자의 경우 초경 이전의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여자는 공녀 차출과 위안부 공출 등으로 조혼했고 남자는 유교적 관습으로 조혼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한국의조류특집 #딱따구리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5 오대십국 '화예부인') 우리 부자가 사십년을 풍족하게 병사를 길러왔지만 일단 적을 만나니 동쪽을 향해 화살 한 발 쏘지 못하는구려! 후촉(後蜀)의 마지막 황제 맹창(孟昶)의 황후인 화예부인(花蕊夫人)이 송(宋)나라 조광윤의 공격에 탄식하며 남긴 시조이다 화예부인은 오대십국 시대 후촉의 여류시인이자 문인으로 혜비 서씨(慧妃 徐氏)라고 부른다 후촉은 후당의 장군 맹지상(孟知祥)이 반란을 일으켜서 건국된 오대십국 중 오대의 마지막 왕조이다 맹지상이 즉위 1년 만에 사망하자 3남 맹창이 2대 황제로 즉위했다 조광윤이 송나라를 건국하여 후촉을 공격하여 정복하고 맹창을 살해했다 군왕이 성 위에 항복 깃발 세웠다지만 첩은 깊은 궁에 있어 알 길이 없었네. 14만 명이 모두 갑옷을 벗었다 하니 남아는 하나도 없었던 것인가! 화예부인이 조광윤에게 끌려가서 망국의 한을 읆은 시이다 화예부인은 조광윤의 후궁이 되어 조광윤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하고 자결했다 '꽃으로 그 모습 비교하기 부족하고 꽃술로 그 용모 형용하기 부족하다' 라고 평가받고 있다 시조보다 더 시인이 아름답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오대십국 #화예부인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3 동진 '도연명') 歸去來辭(귀거래사) / 도연명 논밭 장차 황폐해지거늘 어이 아니 돌아가리. 지금껏 내 마음 몸의 부림 받았거니,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는가?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으니, 이에 앞으로의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도다. ~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어보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본다. 이렇게 자연을 따르다 끝내 돌아갈 것인데, 천명을 즐겼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위진남북조 시대에 동진(東晉) 말기부터 유송(劉宋) 초기까지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 도연명(陶淵明)이 남긴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일부이다 도연명은 벼슬을 얻어 심양군(尋陽郡)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으로 재직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도연명은 심양군(尋陽郡)에서 팽택현(彭澤縣)으로 시찰 온 하급관리에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 쏜가" 라며 출세를 포기하고 전원으로 돌아가서 시를 써서 도연명집(陶淵明集)을 남겼다 동진(東晉)은 사마염이 건국했던 서진(西晉)이 흉노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자 사마예가 강남(江南)에 세운 왕조이다 유송(劉宋)은 남북조 시대에 유유가 강남에 세운 남조의 첫 번째 왕조이다 팽택현(彭澤縣)은 현재의 장쑤성(江西省) 지역이다 도연명은 술을 좋아하고 국화를 사랑했고 유교와 노장사상을 흡수하여 쉬운 말로 시를 썼다 동진의 조정으로부터 운둔지사에게 주어지는 좌저작랑(佐著作郞)의 관직을 받았다 무릉도원을 추구하다가 62세에 사망했다 무릉에 사는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만발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 있던 아름다운 마을에서 며칠간 머물다가 돌아왔다 다시 선경(仙境)을 찾았지만 두 번 다시 찾지 못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내용이다 오늘의 삶과 현실이 무릉도원인지 생지옥인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동진 #도연명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한국의 조류특집 / 7 뜸북새 & 뻐꾹새) 오빠 생각 / 최순애 시, 박태준 작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 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