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모범? 성급한 파티".. 이스라엘·칠레·영국 교민 인터뷰
정우진 입력 2021. 04. 21. 00:02
접종 선두 3개국 교민에 들어보니
이스라엘, 노마스크.. 일상 회복
영국, 식당·체육시설 등 문 열어
칠레, 매일 6000명대 확진 최악
백신 접종률 1~3위인 이스라엘과 영국, 칠레(왼쪽부터)의 현재 모습.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비치에서 20일(현지시간) 젊
은이들이 마스크를 벗은 채 옹기종기 모여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마음껏 젊음을 누리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도 시민들이
야외 카페에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반면 칠레 산티아고 국제공항은 록다운으로 인적 없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박준수 목사 제공
이스라엘, 영국 그리고 칠레.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세 국가는 나란히 접종률 1~3위(인구 500만명
이상 기준)를 기록하고 있는 ‘백신 모범국’이다. 하지만 각국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스라엘과 영
국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착착 진행 중이다. 다만 이스라엘은 변이 바이러스 우려를 걱정하는 분위기이고, 영국에선 ‘성급
한 파티를 열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반면 접종 직후 방역 빗장을 푼 칠레에선 확진자가 폭증했고 록다운(Lockdown·봉
쇄)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국민일보는 20일 세 국가에 사는 현지 교민들과의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칠레 교민 A씨는 “시민들이 더 방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칠레는 19일(현지시간) 기준으로 백신 접종률이 40.5%다. 빠른 접종에 자신감을
얻은 칠레는 지난 1월부터 방역 조치를 완화했다. 일부 상업시설이 문을 열었고 시민들은 여름휴가를 즐겼다. 하지만 그
결과 일일 확진자가 6000~7000명대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A씨는 “1, 2월이 여름휴가철인데 당국에서 한 번 휴가를 갈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줘 바닷가엔 휴가를 즐기는 인파가 넘쳤
다”며 “지금 감염자가 속출하는 건 그 여파가 컸다”고 회고했다.
결국 칠레는 지난달부터 국경을 폐쇄하고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 엄격한 전면 봉쇄 조치를 다시 내렸다. A씨는 “1주
일에 2회 허가증을 받아 외출할 수 있는데, 1회 2시간씩 생필품 구입 등 목적으로만 나갈 수 있다”며 “식자재판매, 약국
등 필수 업종 종사자는 이동이 가능하지만 대다수는 갇혀 있는 꼴이니 답답하다”고 전했다. 그는 “당국에서 궁여지책으
로 내준 아침 운동시간 2시간이 현재 시민들의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백신 접종자의 93%가 시노백 제품을 접종한 탓에 현지에선 중국산 백신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고 한다. A씨는 “열이 난
다거나 속이 메스껍다거나 하는 투약 후 증상이 전혀 없으니 ‘백신에 물 탄 것 아니냐’는 농담도 서로 한다”고 했다.
칠레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도 집단면역을 위해선 효과가 있는 백신을 사용하고, 대규모 백신 접종 후엔 일정 기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칠레보다 약간 높은 접종률(49.3%)을 보이는 영국은 지난 12일부터 록다운 2단계를 해제했다. ‘2가구 이내 6인 이하’로
인원을 제한해 식당의 야외 영업이 허용됐고 미용실, 체육시설, 도서관 등도 문을 열었다. 현지 교민들은 수개월간 지속
된 록다운이 풀려 ‘보복 소비’가 일어나는 등 들뜬 분위기가 거리마다 넘친다고 전했다.
교민 남모(27·여)씨는 “아직 영국 날씨가 춥고 쌀쌀한데도 밖으로 나와 벌벌 떨며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시내에
나가면 사람이 정말 많다. 코로나 이후 그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런던에 사는 박준수(39) 목사는 “야외 테이블이 설치된 골목마다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닥다닥 모여 마신다”며
“그간 생필품을 제외하고 돈을 쓸 수 없었다 보니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소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2000~3000명대를 기록해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학생 김모(28)씨는 “시민
들이 백신 접종 이후 너무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것 같다”며 “야외에서 벌떼처럼 모이는 경우도 있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걱정스럽다. 안심할 수도 없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영국 교민들은 백신에 대한 불신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영국에선 코로나로 13만명 가까이 사망했
다”며 “사망자가 많으니 부작용이 어떻든 백신 접종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1차 접종률 1위(59.2%)인 이스라엘은 한때 1만명에 달했던 신규 확진자 수도 최근 100~200명대로 크게 줄었다. 실외 마
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는 사흘 전 공식적으로 해제됐다.
빠른 백신 접종과 방심하지 않는 방역 조치로 이스라엘은 현재 어느 국가보다 코로나19로 잃어버렸던 일상에 근접해 있
다.
교민들은 유월절, 독립기념일 등 대규모 인파가 몰렸던 시점 이후에도 신규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있는 데는 백신의 역
할과 방역 실패의 교훈이 컸다고 설명했다.
교민 장모(47)씨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백신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며 “백신을 안 맞으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지만 베
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솔선수범으로 가장 먼저 백신을 맞고 안전하다는 점을 알리는 등 홍보에 나선 효과가 컸다”며 “이
후 일단 백신을 모두 맞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장씨는 최근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으로 ‘안도감’을 꼽았다. 그는 “사람을 만나면 코로나19로 불안해 거리를 두게 됐는데,
이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이를 등교시킬 때 차가 막히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젠 모두가 등교하니 아침마다 교통체증이 심하다”며 “그럴 때 ‘우리가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왔구나’라고 느끼게 된
다”며 웃었다.
예루살렘에 사는 김모(49·여)씨는 “지난해 5월 확진자 수가 거의 없어 봉쇄 조치를 한꺼번에 풀었는데, 여름부터 확진자
가 수천명씩 나왔다”며 “정부도 시민들도 당시를 기억하고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지 교민들은 확실히 활기를 되찾았지만 아직까진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3월 말 유월
절이 시작되기 전부터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긴 했지만 아직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됐다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백신이 모든 변이 바이러스를 막는 건 아니기 때문에 ‘노 마스크’가 허용돼도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등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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