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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역대급 국산 전투기 KF-X, 앞길 막아선 美 F-15EX..빈약한 '무장' 강화 시급

인주백작 2021. 4. 6. 06:49

[취재파일] 역대급 국산 전투기 KF-X, 앞길 막아선 美 F-15EX..빈약한 '무장' 강화 시급

김태훈 기자 입력 2021. 04. 05. 09:15

 

▲ KF-X가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는 상상도


8조 8천억 원 들여 개발하는 역대급 국산무기인 한국형 전투기 KF-X가 이달 초 공식 첫선을 보입니다. 롤아웃(roll out)이

라는 행사입니다. 갓 조립을 마친 완전한 시제 1호기를 대중에게 공개하며 KF-X 성공을 다짐하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KF-X 롤아웃은 당초 5월 개최 예정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몇 번 당겨졌고, 이달 초로 최종 조정됐습니다. 20% 지분

참여국이지만 분담금도 안 낼 뿐더러 무리한 역제안을 하는 인도네시아의 귀빈 참석이 최근까지도 확정되지 않아 좀 불

안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이 방한하는 것으로 정리되면서 롤아웃은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KF-X에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복병치고는 너무 강력합니다. 미국 보잉의 최신예 전투기 F-15EX입니다. 우리

공군의 주력 F-15K의 성능개량 계획과 맞물려 F-15EX 도입설이 고개를 들더니 서서히 소문의 거죽을 벗고 있습니다. 미

국 측은 천문학적 액수의 F-15K 성능개량 비용을 깎고, 반대급부로 우리 공군은 F-15EX 수십 대를 도입하는 방안이 폭넓

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모자란 전투기 살림에 성능개량하려면 F-15K가 전력에서 무더기 이탈하는 터라 F-

15EX를 신규 도입해서 그 공백을 채우자는 논리도 유포되고 있습니다.

 

미국 보잉의 4.5세대 전투기 F-15EX


F-15는 4세대, F-15EX는 4.5세대 전투기라고 했을 때 KF-X는 F-15EX와 같은 4.5세대에 속합니다. 막대한 국방비로 국산

4.5세대를 개발하고 있는데 미제 최신형 4.5세대를 사들일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입니다. F-15EX가

우리 공군의 전투기 구색에 끼어들면 같은 4.5세대 KF-X의 양산 대수는 줄어듭니다. 가격 상승 요인이어서 수출 경쟁력

도 추락합니다. 자칫 KF-X 사업의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속도와 무장만이 살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개발 시간표 저 끄트머리에 처박아둔 공대지 무장 탑재 계획을

확 앞당겨 1차 양산분부터 적용해서 하루라도 일찍 공대공, 공대지로 완전 무장한 KF-X를 내놓는 것입니다. 보잉의 공세

를 피하면서 KF-X를 성공시키기 위해 조속히 KF-X를 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능개량 5조 원 청구서와 F-15EX의 급부상

 

우리 공군의 주력 F-15K도 이제는 낡아서 성능개량할 때가 왔습니다. 기존 구식 레이더를 전천후 에이사(AESA) 레이더로

바꾸는 등 항공전자장비의 교체가 주요 대상입니다. 방사청과 공군에 따르면 3~4가지 대범주의 성능개량이고, 미국 측

이 추산하는 비용은 5조 원을 상회합니다. 에누리가 없으면 F-15K 1대당 9백억 원이 소요됩니다. 요즘 F-35A 가격이 9백

억 원 이하로 떨어졌는데 4세대 전투기 1대의 성능개량 비용이 5세대 전투기 1대 값입니다.

 

당연히 에누리 들어갑니다. 3조 4천억 원까지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수한 가격 인하가 아닙니다. 공군의 한 관

계자는 "3조 4천억 원은 보잉의 F-15EX를 20대가량 도입하면서 F-15K을 성능개량했을 경우의 비용"이라고 설명했습니

다. 이렇게 되면 F-15K 성능개량에 3조 4천억 원, F-15EX 20대 도입에 대략 2조 원입니다. 합치면 5조 4천억 원입니다.

미국이 애초에 부른 F-15K 성능개량 비용과 얼추 비슷합니다. 왠지 미국 측의 작전 같습니다.

 

미국 측과 우리 공군, 방사청이 이렇게 의사를 주고받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유력 매체들에서 F-15EX의 유용성을 부각하

는 기사들이 앞다퉈 나오고 있습니다. "F-35A는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소프트웨어도 결함투성이여서 미국에서조

차 배척당한다", "미국은 그래서 막대한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 F-15의 최신형 EX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특히 종심이 짧은 한반도 전구에서는 F-35A보다 F-15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분석이 많아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

 

미국 보잉 본사의 전투기 사업부에서 보잉 코리아로 전투기 홍보 예산을 보냈다는 말도 들립니다. 보잉 코리아가 전투기

홍보를 한다면 대상은 딱 하나, F-15EX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공군의 소요 제기로 F-15EX 도입을 논의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보잉이 한국 공군의 소요를 대신 제기해주는 모양새입니다. 외국업체가 한국 국방의 소요를 제기하는 유례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빈약한 KF-X 무장

 

이달 초 롤아웃 때 공개될 KF-X 시제 1호기의 막바지 조립이 한창이다.


F-15EX의 장점은 단연 무장입니다. 무장탑재량이 무려 13.4톤입니다. 11톤의 F-15, 8톤의 F-35A를 압도하는 것은 물론,

어지간한 폭격기보다 미사일과 폭탄을 더 많이 실을 수 있습니다. 괴물 무장의 F-15EX가 들어오면 같은 4.5세대의 KF-X

는 성치 못합니다. 현재 KF-X 개발 시간표로는 더욱 그렇습니다.

 

KF-X는 2026년부터 2028년까지 1차분 40대, 이후 2032년까지 2차분 80대를 만들 계획입니다. 1차 양산 블록-1(Block-1)

에는 공대공 무장만 탑재됩니다. 공대지 무장은 2차 양산 블록-2(Block-2)부터 들어갑니다. 공대공 전용 KF-X 블록-1은

F-15EX에 견줘 반의반 쪽 전투기에 불과합니다. KF-X 블록-2나 나와야 F-15EX에게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습니다. 적어도

8년 뒤, 먼 훗날의 일입니다.

 

F-15K 성능개량 비용 인하를 내걸고 F-15EX를 밀어붙이면 시쳇말로 '국뽕'에 올라탄다고 해도 KF-X는 F-15EX에 밀립니

다. 한미 관계의 안정적 관리라는 명분이 얹히면 F-15EX는 한반도 시장에서 무적이 됩니다.

 

KF-X의 아킬레스건,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은 독자 개발되고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LIG넥스원과 함께 개발하

다가 현재는 방사청이 ADD 빼고 업체 주관 개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거리 수백km의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은 개발

에 통상 15년 이상 걸립니다. 그럴 시간 없습니다. 무장에는 무장입니다. KF-X도 무장을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블록-1

공대공 뿐 아니라 장거리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는 것입니다.
 

KF-X를 무장하라

 

공군 기지에 배치된 KF-X의 상상도


KF-X 무장 강화의 지름길이 있다면 바로 그 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공군의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인 타우러

스를 KF-X에 바로 통합하면 2026년 블록-1부터 공대지와 공대공을 완전 무장한 4.5세대 KF-X를 내놓을 수 있다고 합니

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블록-1에 탑재될 전투기용 에이사 레이더와 장거리 공대지 타우러스의 통합은 어렵지 않다",

"최대 1년 반이면 타우러스와 KF-X의 통합이 가능하다"고 단언합니다. ADD가 독일 타우러스의 기술 지원을 받아

국내에서 독자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 역시 주목되는 시도입니다.

 

KF-X의 공대공 미사일은 중거리 미티어와 단거리 IRIS-T입니다. 특히 미티어는 사거리가 200km로 길고, 초음속 비행에

적합한 덕티드 로켓 덕에 대단히 빠릅니다. 적의 전투기가 회피하기 힘든 대표적 공대공입니다. 타우러스는 500km를 낮

은 고도로 날아 요격을 피하고, 벙커도 뚫을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입니다. 미티어와 타우러스로 무장한 KF-X는 4.5세대

로 손색없습니다. 블록-2는 늦습니다. 블록-1부터 장거리 공대지 타우러스를 달아야 합니다.

 

빈약한 무장의 전투기는 각국 공군의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영국은 공대공 전용 유로파이터 트렌치-1(Trench-1) 24대를

퇴역시킬 참입니다. 공대지 무장을 장착할 수 있도록 성능개량할 수 있지만 돈이 턱없이 많이 들어 단 20년 운용한 전투

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영국은 또 항공모함용 함재기로 F-35B 대신 전통의 해리어 전투기를 채택하려고 합니다. 역시 무

장 때문입니다. 요즘 인도네시아, 우크라이나 등이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를 찾는 것도 짱짱한 무장이 큰 이유입니다. 말

레이시아, 필리핀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공격기 FA-50 도입을 고려하면서 공대지와 공대공 무장 강화를 요구하

고 있습니다.

 

KF-X는 판돈이 벌써 제법 들어간 초대형 도박입니다. 되돌릴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합니다. 2024년 양산계

획을 결정하는데, 이에 앞서 반드시 블록-1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통합의 패스트트랙(fast track)을 확정할 필요가 있습니

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공대지 무장 없는 KF-X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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