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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중설' 오보 확인되자 진보 댓글러는 보수언론 찾아가 공격적 비난↑

인주백작 2021. 3. 28. 11:48

'김정은 위중설' 오보 확인되자 진보 댓글러는 보수언론 찾아가 공격적 비난↑

김원진 기자 입력 2021. 03. 28. 08:39


[경향신문]
2020년 4월은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이던 때였다. 4월 30일에는 전날(자정 기준) 대비 신규 확진자 수가 4명에

불과했다. 잠잠해진 코로나19의 빈틈을 북한 이슈가 파고들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위중설’이 지라시로 등장한 뒤

부터다. 2020년 4월 14일이었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 위중설은 빠르게 퍼졌다. 국내 북한 전문매체인 데일리NK와 미국 보도전문채널 CNN은 ‘건강 이

상’을 보도했다. 북한에서 온 태구민·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못 걷는다”, “사망 확률 99%”라고 했고, 언론이 받아쓰며

위중설을 키웠다. 한국 정부에서 위중설을 잇따라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반전은 5월 2일이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전

날 김정은 위원장이 평안남도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전까지 김정은 위원장이 위중하다는 보

도는 모두 일종의 가짜뉴스가 됐다.

북한 이슈는 보수·진보가 대립하는 주제 중 하나다. 진보가 대북 유화정책을 관대하게 본다면, 보수는 북한에 보다 적대

적이다. 김정은 위중설 국면에서도 보수세력이 가짜뉴스를 증폭한 측면이 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김정일 위중설

직후 펴낸 ‘북한 관련 허위정보와 대응’ 보고서에서 ‘북한 관련 가짜뉴스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를 주고받

으므로 더 극단화되는 진영논리에 갇힌 집단극화 현상으로 확증편향 표출’이라고 분석했다.

흔히 국내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란은 여론 장악의 고지처럼 여겨진다. 댓글 여론을 선점하려다 벌어진 국정원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이나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처럼 검찰수사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김정은 위중설을 둘러싼 국내 포털사이트(네

이버) 뉴스 댓글 양상은 어땠을까.

왼쪽은 2020년 4월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 이날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

은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오른쪽은 같은 해 5월2일 공개된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사진. |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공수교대와 ‘전략적 비난’

김정은 위중설을 둘러싼 보도는 대부분 팩트체크 성격을 띠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나타나기 전후로 사실관계 확인 중심

의 보도가 이어졌다. 시민들이 팩트체크 과정을 하나하나 기사로 접하는 효과가 생겼다. 이 때문에 위중설 확인 전후 뉴

스에 달린 정치성향별 댓글 추이를 선명하게 비교해볼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카이스트 경영공학과의 강태영씨(석사)와

심재웅씨(박사과정)가 쓴 논문 ‘팩트체킹에 대한 온라인 뉴스 댓글에서의 당파적 반응 연구-김정은 사망설을 중심으로’는

김정은 위원장 생존 확인 전후의 댓글 양상을 분석했다. 이 논문은 ICWSM(전미인공지능학회의 웹·소셜 미디어 부문 콘

퍼런스)에 실렸다.

논문은 2020년 4월 30일부터 닷새간 네이버 정치 섹션 인기 뉴스 상위 30개에 댓글을 단 유저 8만2100명을 추렸다. 이

중 268만6039개 댓글 이력이 있는 유저 1642명을 무작위 추출했다. 이들의 댓글 이력을 자체 알고리즘으로 추적해 정치

성향을 보수와 진보로 나눠 다시 1617명을 선별했다. 예를 들어 “그래도 탄핵당한 대통령 배출한 정당은 절대 안 뽑는

다!”, “홍발정당이 할 말이 있나?”와 같은 댓글을 쓴 유저는 진보성향으로 간주했다. “더듬어만진당;;;”, “북한이랑 왜 친하

게 지내야 하지”와 같은 댓글을 자주 쓴 유저는 보수성향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김정은 위원장 생존 확인 전후의 댓글 양상은 진보와 보수의 ‘공수교대’ 양상을 보였다. 생존 확인 이

전까진 보수의 우세, 생존 확인 이후에는 진보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김정은 위중설이 가짜뉴스로 판명 난 뒤에는 댓글을

다는 진보성향 댓글 유저 비율이 보수성향 댓글 유저를 역전했다는 말이다. 2020년 5월 2일 이전에는 보수성향 유저들

의 댓글 작성 비율이 79.43%로, 진보성향 유저(73.66%)에 비해 높았다. 김정은 위원장 생존 확인이 된 뒤에는 진보성향

유저(91.23%)의 댓글 작성 비율이 보수성향 유저(89.46%)를 앞질렀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댓글 유저의 ‘전략적 움직임’이 포착되는 점도 특징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석상 등장을 알린

2020년 5월 2일 이후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다룬 김정은 위중설 기사에 진보성향 댓글 유저의 욕설이나 부정적인 댓글이

늘었다. 눈에 띄는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가 아닌 특정 언론사 기사를 ‘콕 집어’ 찾아가 댓글을 달았다는 점에서 전략적 움

직임으로 볼 수 있다.

연구설계에 따라 댓글을 단 전체 유저로 확대해보면, 진보성향 댓글 유저가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단 부정적 댓글은 약 3

만9450개 늘어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희망사항은 아니고? 그런데 정은이 죽으면 좋은 일 생기냐?”, “가짜

뉴스 정말 문제다.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조선 고마해라 추잡하다 ㅉㅉ 이것도 신문이라고”, “누구냐. 얘 99프로 디

졌을 꺼라는 넘이” 등 댓글이 네이버의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사에 달렸다.

늘어난 진보성향 댓글 유저의 욕설 댓글을 추정해보면 4만4330개가량이다. 욕설 댓글 중에는 공격적으로 보수언론과 보

수세력을 비난하는 댓글도 다수 보였다. 욕설 댓글로는 “이ㅅㄲ 인버스나 국방위산업체에 배팅해놨는지 조사해야 한다”,

“사진 나왔어 븅시나ㅋㅋㅋ 국정원을 안 믿고 꽃제비와 해외에서만 주로 활동한 태영호 믿는 수준” 등이 대표 사례로 꼽

힌다.

■진보나 보수나 거기서 거기?

온라인 공간에서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움직일까. 논문 저자 강태영씨는 “직관적으로 보수와 진보는 각각의 생래적 특징

이 있다고들 생각한다. 가령 보수가 온라인 공간에서 더 공격적이라고 여겨진다”고 했다. 진보매체 이용자는 자신과 비슷

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뉴스에 단 댓글이 더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강도가 보수매체 이용자에 비해 더 크다는 취지의

국내 연구도 있다.

연구의 결론은 기존 견해와 결이 다르다. 강태영씨는 “이 연구는 생래적 특징을 떠나 특정 상황이 주어질 경우 양 진영

사람들이 모두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진보·보수의 생래적 특징보다 상황과 맥락의 영향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공저자 심재웅씨는 “진보성향의 유저들이 진보언론보다 보수언론의 기사에서 더 공격적인 댓글을 많

이 남겼다는 것은 상대 진영의 정당성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보수 중심의 한국언론 지형도 진보 댓글러의 ‘전략적 움직임’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한국언론학보에 실린

논문 ‘한국 정파언론 환경의 특수성은 보수와 진보수용자의 매체 태도와 이용에 차별적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면, 보수

성향 독자에 비해 진보성향 독자가 적대적 정파성을 더 강하게 지각한다. 보수성향 독자가 진보언론을 평가하는 것보다,

진보성향 독자들이 보수언론을 더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다음에 올라온 보수언론 기사에는 내

용과 관계없이 언론사를 비판하는 댓글이 다수 달리기도 한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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