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개발 도면 빼돌려도 처벌 없다…LH, 그들만의 엇나간 의리
[중앙일보] 최현주 기자 입력 2021.03.12 06:53 수정 2021.03.12 08:04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 파장이 커지면서 LH 쇄신안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
리는 11일 1차 합동조사 결과를 밝히며 “LH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기존의
병폐를 도려내고 환골탈태하는 혁신방안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LH, 낙하산 사장 배제하고 증권사보다 더 엄격한 규율"
전문가들은 이번 땅 투기 의혹이 빚어진 이유를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구조적 문제'로 본다. 토
지 개발부터 주택 공급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는 업무 특성상 투기 유혹은 큰데 이를 막을 안전장치는 턱없이 부실해서
다.
현재 LH에서 신도시 개발 관련 정보를 다루는 부서 직원에 대한 안전망은 관련 정보 검색을 위해 PC에 접속한 기록이 남
는 수준이다. 자료 유출을 막기 위해 관련 정보를 인쇄하면 암호화된 수식어로 출력이 되지만,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쉽
게 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세종시 연서면 스마트 국가
산업단지 일원에 벌집형태의 조립식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밭에는 묘목이 식재되는 등 땅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김
성태 기자
투기 유혹 막을 안전장치 미비
직원의 부정한 행위가 드러나도 처벌은 미미했다. 예컨대 2018년 고양 삼송‧원흥지구 개발 도면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
했지만, 관련 직원이 받은 징계는 ‘경고’ 수준이었다. 이런 배경에는 LH 직원 간 끈끈한 유대감이 작용한다. LH는 공기업
중에서도 유독 퇴직한 직원과 현직 직원 간 모임도 활발하다.
그만큼 ‘전관예우’ 논란도 크다. 송언석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국민의 힘)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LH에서 수의계약을 따낸 건축사 사무소 상위 20개 업체(수주액 기준) 가운데 11개 업체가 LH 출신이 대표로 있거나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정보를 관장하는 기구인 만큼 주식 정보를 다루는 금융기관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
재도 LH 자체 규정에 ‘미공개 개발정보 이용 금지’ 조항이 있지만, 지난 10년간 이 조항에 근거해 적발·처벌된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일단 처벌 규정이 ‘내부규정에 의한 자체 징계’일 뿐이다.
이와 달리 금융 공기업은 이런 사실이 적발될 경우 검찰에 고발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증권사 직원은 주
식에 투자하면 안 되고 교수도 친인척 중에 입시생이 있으면 그 해는 입시 업무에서 배제된다”며 “환수조치를 비롯한 강
력한 처벌 조항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이해충돌방지법 등 관련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해충돌방지법이 도입되면 LH 직원은 부동산 거래를 하기에
앞서 의무적으로 미리 신고하고 관련 직무를 피해야 한다. 직무상 비밀을 이용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한 것으로
인정되면 이를 몰수하거나 추징하는 한편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처벌을 받는다.
낙하산식 사장 선임으로 인한 방만 경영도 문제로 꼽힌다. LH는 2009년 초대 사장인 이지송 사장(2009~2013년)부터 이
재영 사장(2013~2016년), 박상우 사장(2016~2019년), 변창흠 사장(2019년~2020년)까지 모두 외부인이다. 업계에선 “LH
가 주택 사업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고 공기업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만큼 외풍을 막아줄 수 있는 힘 있는 외부 인사가 사
장이 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있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토지에 한국토지주택공사를 홍보하는 수 십개의 대형 홍부물이 펜스에 부착돼 있다. 김성
태 기자
낙하산 수장, 내부 단속 소홀한 영향도
하지만 10년 이상 외부인이 수장을 맡으면서 내부 살림을 돌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변창흠 전 사장은 재
직 당시 경남 진주에 있는 LH 본사에 한 달 평균 7일만 근무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됐다. 주로 국회가 있는 서울이나
국토부 등의 주요 부처가 모여 있는 세종시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희귀 나무 심기' '지분 쪼개기' 등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변 전 사장은 "직원들 이익 보려고 한 것 아니
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업계에선 “현장을 가봤다면 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미 사장 시절부터 모든 관심이 국토부 장관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했고 실제 행보도 그랬다"고 말했다.
강경우 한양대 건설교통학부 교수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일(신도시 조성)을 성급하게 밀어붙이니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라며 “이 기회에 차근차근 제도적인 발판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땅개발 도면 빼돌려도 처벌 없다…LH, 그들만의 엇나간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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