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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인주백작 2021. 2. 8. 06:11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강은 가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 제 몸 위에 작은 나무토막이며

쪽배를 띄워 서로 뒤섞이게 하고, 도움을 주고

시련을 주면서 다른 마음 다른 말을 가지고도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친다.

 

건너 마을을 남의 나라 남의 땅이라고 생각하게

버려두지 않는다. 한 물을 마시고 한 물속에 뒹굴며

이웃으로 살게 한다.

 

강은 막지 않는다.

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짐짓 몸을 낮추어 쉽게 건너게도 하고,

몸 위로 높이 철길이며 다리를 놓아, 꿈 많은 사람의

앞길을 기려도 준다.

 

그래서 제가 사는 땅이 좁다는 사람은 기차를 타고

멀리 가서 꿈을 이루고, 척박한 땅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강 건너에 농막을 짓고 오가며 농사를 짓다가,

아예 농막을 초가로 바꾸고 다시 기와집으로 바꾸어,

새 터전으로 눌러앉기도 한다.

 

강은 뿌리치지 않는다.

전쟁과 분단으로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제 고장

사람들이 뒤늦게 찾아와 바라보는 아픔과 회한의

눈물 젖은 눈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제 조상들이 쌓은 성이며 저자를 폐허로 버려둔 채

탕아처럼 떠돌다 돌아온 메마른 그 손길을 따듯이

잡아 준다. 조상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수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이 강을 잊지 말란다.

 

강은 열어 준다,

대륙으로 세계로 가는 길을, 분단과 전쟁이 만든

상처를 제 몸으로 말끔히 씻어 내면서. 강은 보여준다,

평화롭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어두웠던 지난날들을

제 몸속에 깊이 묻으면서.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 신경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