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센트럴파크에 '토끼 감옥'이? 8년째 섬에 갇힌 토끼들
김지숙 입력 2021. 01. 11. 16:26 수정 2021. 01. 11. 17:36
[애니멀피플]
인천시, 호수 위 인공섬에 2012년 사육장 조성
토끼보호연대 "중성화 시행 뒤 육지로 옮겨야"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공원 내 토끼 사육장이 인공섬에 조성되어 있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인천시 송도 센트럴파크 공원에 조성된 토끼 사육장이 논란이다. 공원 호수에 떠 있는 인공섬에 만들어진 까닭에 ‘토끼
섬’이라 불리며 사육장은 관광객들의 볼거리가 되어 왔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8년 째, 그동안 섬에 고립된 채 생활해
온 토끼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논란은 지난 2일 한 시민이 토끼커뮤니티 ‘풀 뜯는 토끼동산’(토끼보호연대)에 ‘송도 센트럴파크 토끼지옥섬 탈출을 위해
도와주세요’라는 글을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토끼 반려인인 문 아무개씨는 최근 인천 송도로 이사하며 처음 토끼섬 존재
를 알게 됐다.
“외딴 섬에 생명을 가둔 토끼 감옥”
문씨는 게시글에서 “토끼섬은 그야말로 물로 둘러싸인 외딴 섬에 산 생명을 가둬둔 토끼 감옥이다. 토끼들은 바닷가 쪽
에 위치한 송도 매서운 한파에 시달리고, 부족한 먹이와 늘어난 개체수 탓에 땅을 파서 탈출하려다 죽은 아이들도 숱하
다”고 전했다.
이어 “안내 팻말에는 일년에 2~3회 산란, 4마리까지 출산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기재해 놓고 공원관리 담당을 검색해봐
도 토끼섬 내용은 찾기가 어렵다”며 2014년과 2016년 토끼섬과 관련한 민원이 게시됐던 게시판 사진을 첨부했다. 성인
토끼는 한 달에 한 번 임신이 가능하며, 많으면 6마리까지 새끼를 낳기도 한다.
토끼섬은 육로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며, 공원관리공단 사육담당자는 위태롭게 뗏목을 타고 이곳을 오가고 있었다. 토끼보
호연대 제공
토끼섬은 육로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며, 공원관리공단 사육담당자는 위태롭게 뗏목을 타고 이곳을 오가고 있었다. 8일 현
장 조사 당시 모습. 토끼보호연대 제공
토끼들이 걱정됐던 그는 1월4일 직접 센트럴파크의 관리 주체인 인천공원관리공단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토끼섬 사
육과 관리 실태를 문의했다. 그 결과 토끼섬에 사육되고 있는 토끼들은 모두 중성화가 안되어 있었으며, 추후 시행 계획
도 없었다. 개체 조절에 대한 매뉴얼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인천공원관리공단은 문씨가 ‘토끼들이 낮은 펜스를 넘거나, 굴을 파서 탈출하다 물에 빠지는 것은 알고 있으냐’ 묻자 “물
에 빠져 죽은 토끼가 여럿이란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문 아무개씨와 토끼보호연대가 토끼섬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게 된 배경이다.
제보자 문연경씨는 과거 여러 차례 토끼섬 관련 민원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8일 현장을 찾은 토끼보호연대에 따르면, 현재 20여 평 되는 사육장 내에는 18마리의 토끼가 살고 있었다. 개체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아 암토끼와 수토끼의 수는 명확치 않았다. 게시글의 설명처럼 토끼섬은 호수 중간 인공섬에 조성돼 배를
타야지만 접근이 가능했다. 이날은 연이은 한파로 호수가 얼어붙어 카약이나 배 운항이 정지돼 ‘스티로폼 뗏목’을 타고서
야 사육장에 접근이 가능했다.
73마리까지 늘었다 관리 어려워 분양
토끼보호연대 최승희 활동가는 “지난 여름 논란이 됐던 동대문구 배봉산 토끼장과는 비교도 안되게 열악했다. 작은 밥그
릇과 물그릇이 2개 놓여있었는데, 그나마 물그릇은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올 여름까지만 해도 100여 마
리 가까이 된다는 목격담도 있었는데, 섬 내부에 비나 바람을 피할 공간은 작은 움막 한 곳이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현장 조사에서는 영하 12도 날씨에 토끼들이 움막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다가, 먹이를 주자 비로소 밖으로 나오는 모습과
호수 가까이에 설치된 울타리 아래에 땅굴을 파놓은 흔적 등도 목격됐다. 인천공원관리공단은 이날 오후 짚단을 이용해
울타리에 방풍막을 설치했는데, 이 또한 토끼보호연대의 요청에 따른 작업이었다는 설명이다.
8일 토끼보호연대 현장 조사 당시 토끼들의 모습. 토끼섬 내부에는 움막 한 곳이 설치되어 있었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8일 오후 2시 당시, 급여 전 혹한에 얼어붙어 있는 토끼 물그릇. 토끼보호연대 제공
그 많던 토끼들은 현재 어디로 갔을까. 11일 인천공원관리공단 송도공원사업단 관계자는 “올 여름 개체수가 73마리까지
늘어나 관리가 힘들어져서 인천공원관리공단 내 다른 공원으로 20마리씩 2차례에 걸쳐 분양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관
리인원 1명이 토끼와 사슴사육사를 전담해 관리한다. 오전과 오후 하루 2번씩 급여도 제대로 하고 있고, 따로 혹한으로
인한 폐사가 있다거나 하는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개체관리를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한 답변은 명확치 않았다. 이 관계자는 “2012년 토끼섬 개장 이후 추가
구매를 하지는 않은 걸로 안다. 자연분만에 의해서 개체가 늘어나고, 폐사하면서 자연히 조절되던 것이 지난 여름에는 너
무 늘어나 관리가 어렵게 됐던 것”이라 답했다. 지난 여름 분양 이후 남아있던 토끼 33마리가 반년 사이 16마리가 죽고,
현재 18마리만 남았지만 큰 문제는 없다는 태도다.
최승희 활동가는 “반려토끼를 야외 사육장에서 키우며 중성화 수술 없이 자연히 개체가 조절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열악
한 환경의 증거다. 개체가 밀집하면 당연히 영역싸움에서 밀려 도태되거나, 병으로 폐사하는 개체들이 생겨난다. 8년 간
중성화를 안했다는 건 그 사이 수많은 토끼들이 상상도 못할 방식으로 죽고 사라졌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사육장 이전·폐쇄는 추가 논의 필요”
현재 토끼보호연대는 토끼섬 환경개선을 위해 △토끼 전수 중성화 △교량 설치 및 사육장 육지 이전 △새 개체 투입 중
지 후 토끼섬 자연폐쇄 △토끼섬 명칭 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다.
송도 센트럴파크의 담당 관청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환경녹지과 담당자는 “중성화는 예산이 마련되는 대로 3~4월 내
시행할 예정이다. 토끼섬 폐쇄는 지금으로서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 중성화가 완료된 뒤 개체가 감소하기 시작하
면 그때 다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환경녹지과는 “토끼섬 이전 등 기존 조성계획을 변경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토끼보호연대 제공
토끼 사육장의 이전에 관련해서는 “2009년 센트럴파크 공원조성계획 당시에 문제없이 진행됐던 사항을 변경하려면 근
거가 필요하다. 도시공원법상 기존 조성계획을 변경할 때는 주민 의견수렴 절차가 필요하다. 토끼섬을 다른 곳으로 옮기
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는 논의가 더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토끼보호연대는 “송도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토끼전시장이 넘쳐난다. 단순히 눈에 들어온 몇 군데 토끼들의 목숨을 부
지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앞으로는 지자체 차원에서 사업을 진행할 때 이런 동물 전시장을 함부로 만들지 못하
게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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