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광일의 입] ‘좌파 1당 독주’ 시대 이제부터 몰려올 일들 본문듣기 설정
기사입력2020.04.17. 오후 6:01 최종수정2020.04.17. 오후 6:07
봄비가 내리고 있지만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태양이 떠올랐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어제와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도
‘좌파 집권 세력’은 사법부, 행정부, 지방자치 의회, 지방자치 단체장, 지방자치 교육감을 거의 90% 가까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집권 세력은 ‘4·15 총선’에서 기록적 압승으로 범여권 190석을 차지함으로써 ‘슈퍼 공룡 제1당’이 됐다.
지금부터 야당은 없는 것이나 같다. 견제 능력을 상실한 야당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저절로 ‘1당 독재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통령은 친문 핵심 그룹으로 집권당 지도부를 재편해서 자신의 밑에 두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됐다. 1948년 제헌 국회가 출범한 이래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견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 시대를 맞게 됐다. 러시아 대통령을 ‘차르’라고 빗댔는데, 2020년 한국에도 ‘문 차르’가 탄생한 셈
이다. 총선 후 민주당 이낙연 당선자는 "무겁고 무서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고, 이해찬 대표는 "정신 바짝 차릴 때"
라고 했다. 그러나 비공개 회의에서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의 (승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 말처럼
‘(100년 만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 독주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윤영찬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같은 청와대 출신 인사
20명이 이번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전에 없던 일이다. 이들은 ‘광흥창팀’이라고 부르는 집권 세력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다. ‘광흥창팀’은 2017년 문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로 구성된 대선 조직이었다. 사무실이 서울 마포구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부근에 있어서 ‘광흥창’이란 이름이 붙었다. 광흥창(廣興倉), 넓을 광(廣), 일어날 흥(興), 곳집 창(倉),
광흥창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관리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던 관청이었는데, 지금의 6호선 광흥창역 자리에 그 관
청이 있었다.
문 대통령의 광흥창팀은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 양정철 민주연구원 원장이 팀장 역할을 했다. 4·15 총선이 끝났
지만 두 사람은 의원도 아니고 집권당에서 공식 직함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차기 대권주자를 만들고, 정권 재창출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어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이제 다시 뒤안길로 가
서 저녁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조용히 지내려 한다"고 했다. 이번 총선이 ‘점심 때’였다면, 그가 기다린다는 ‘저녁’은
2022년 대통령 선거가 아닐까 한다.
이번에 당선돼 국회에 입성한 광흥창팀 멤버들이 문 대통령의 뜻을 국회에서 그대로 실현하는 전위대(前衛隊) 역할을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친문 핵심 의원이 50명쯤 된다. 이재정, 전해철, 김태년, 홍영표 같은 의원들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을 중심에 둔 친위 세력으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입법·행정·사법의 ‘삼각 권한’까지
거머쥐고 흔들 것이다.
몇몇 중요 기관이 무력화될 것이다. 국가적 중립기관, 감독기관들이 무력화되거나 집권 세력의 손발처럼 움직일지
모른다. 선관위, 방통위, 금감원, 공정거래위 이런 곳이 ‘살아있는 권력’ 대해서도 중립적인 감시·감독·중재의 능력을
갖기란 사실상 어렵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친문 인사들이 그곳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이제 야당마저 유명무실하게 됐으니, 그 사람들은 그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견제를 받을 필요 없이 정권에 부역할
수도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헌법적 가치를 기억하고 양심에 따라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검찰도 무력화 될 위험에 처해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탄력을 받아 마무리될 것이고, 7월쯤 공수처가 출범하면 지금
의 검찰 조직과 기능과 역할은 크게 뒷걸음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무력화 시키려 안간힘을 쓸 것이
다. 말하자면 마지막 하나 남은 ‘목에 가시’를 뽑아내려고 할 것이다. 집권당의 비례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우희종 공동대
표는 총선 다음날 "윤석열, 당신의 거취를 묻는다"고 했다. 윤 총장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문 차르’ 대통령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누가 먼저 하나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다.
대검 공공수사부는 어제 4·15 총선의 당선인 300명 가운데 무려 90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당선인 94명을 입건했는데, 그중 4명을 불기소 처분하고, 나머지 90명을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흑색선전 혐의가 62명,
금품수수가 5명, 여론조작이 3명, 기타 24명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광진을 당선인 고민정, 서울 성북갑 당선
인 김영배, 인천 남동갑 당선인 맹성규, 인천 연수갑 당선인 박찬대, 안양 동안갑 당선인 민병덕 씨, 그리고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을 당선인 박진 씨 등이 고발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주을 당선인 이상직 씨의 선거사무실에는 압수수색도
있었다.
검찰은 또 4·15 총선 때문에 잠시 멈췄던 권력형 비리 사건도 수사에 다시 발동을 걸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개입
사건’, 그리고 대형 경제 범죄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라임 사태 사건’과 ‘신라젠 사건’ 수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석열 총장은 ‘갈 길을 간다’는 초지일관 정신으로 수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대검 검사들에게
"정치적 논란이 컸던 사건에는 흔들리지 않는 수사를 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자 여권에서는 "윤 총장의 발언이
언론 등을 통해 새 나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치적인 이득을 챙기기 위해 공권력을 휘두르
려는 거 자체가 검찰 개혁의 대상이다"고 했다. 앞서 유시민 씨는 "윤 총장은 사실상 식물 총장"이라고 했다. 검찰이 선거
사범 수사에 나서자 여권은 "식물총장이 누구를 수사하나"라며 현직 검찰 총장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4·15 총선을 통해 우리나라도 이제 ‘그리스나 아르헨티나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적으로는 ‘선출직 고위 공무원’ 제도를 유지하는 한 이 길이 피할 수 없어 보이기도 한다. 여당이
잘해서도 아니고, 야당이 못해서도 아니고, 다만 대중의 ‘박탈감과 공포와 분노’를 조절하는, 국민 심리를 쥐고 흔드는
기술을 가진 쪽이 집권 세력으로 유지될 것이다. 선거 때마다 집권 세력들은 정권 유지를 위해 현금 살포, 복지 확대,
연금 확대를 약속할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권자들은 제 발등을 찍는, 아니
미래를 감당해야 할 제 자식의 발등을 찍는 포퓰리즘 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여당 압승이라고 하지만, 득표율은 49% 대 41%였다. 수도권에서만 600만이 넘는 유권자가 문 정권을 심판하는 표를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총선이 끝난 뒤 "큰 목소리에 가려져 있었던 진정한 민심을 보여주셨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민심은 여당을 찍은 민심을 말할 것이다. 야당을 찍은 40% 넘는 민심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는
문 대통령의 뜻, 집권당이 하려고 하는 속셈, 이것이 곧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발표될 것이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고 했는데, 앞으로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곧 민심이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게
‘민심 독재 시대’가 열릴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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