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9> 출간)
나는 음주가무에 취미가 없다
더구나 악필이고 난필이고 졸필이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했다
남아수독오거서 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다
그동안 원고지 40,000장에 8,000,000자의 글을 썼다
10년 동안 글을 올리는 4,000여 일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쓰며 고단한 삶을 살았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시달리던 날에도 글을 썼다
본인의 허리 수술을 하는 날에도 글을 썼다
어머니 문산댁의 장례식날에도 글을 썼다
첨단재활요양병원 개원날에도 글을 썼다
4,000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썼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아홉번째 역사야톡을 만들었다
기록한 것만이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2022년 10월 1일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9>을 출간했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9년 동안 SNS에 올렸던 글을 편집하여 매년 한 권씩 <역사야톡 1권부터 9권까지> 총 9권을 출간했다
○ 1장 재미있는 병원 에피소드 50개
○ 2장 다시생확하는 이솝우화 20개
○ 3장 옛날과 지금의 설화 30개
-다시 살아나도 경국지색
-넘어져도 일어나는 우리민족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4장 내고장 절라도의 설화 40개
-절라도 광주권
-절라도 목포권
-절라도 순천권
-절라도 전북권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9>은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고 저자가 직접 판매한다 쪽지, 카톡, 이메일 <sih4253@hanmail.net>으로 주문하시면 배달된다 <서일환 박사의 역사야톡 9>은 택배비 포함하여 18,000원이다
-6편 3.1운동 임정수립 100주년 특집
-7편 정명(定名) 1000년 전라도 특집
-8편 코로나로 못가는 세계여행 특집
-9편 동서고금 설화 특집
1권 1.8만원 / 2권 3.2만원 / 3권 4.6만원 / 4권 6만원
[농협 601139-56-068189 서일환]
[우체국 502211-02-146741 서일환]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역사야톡9
느낌85
댓글11
공유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서일환의역사이야기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결코 그 향기는 팔지 않는다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향가 특집 / 2 처용가) 처용가(處容歌) / 처용(處容)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돌아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으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 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남북국 시대에 신라 헌강왕이 바닷가로 놀이를 나갔다 갑자기 운무(雲霧)가 자욱이 끼었다 신하들이 용왕이 조화이니 좋은 일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왕이 용왕을 위해 절을 짓도록 명하자 운무가 걷혔다 헌강왕은 이곳을 개운포(開雲浦) 라고 하였다 49대 헌강왕은 경문왕의 아들이자 정강왕의 형이며 진성여왕의 오빠이다 헌강왕 때 지배층의 분열로 국력이 쇠퇴하고 나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용의 아들 처용이 왕을 따라 서라벌까지 와서 정사를 도왔다 왕은 처용을 미녀와 혼인시켜 십칠 관등 가운데 아홉째 등급의 벼슬인 급간(級干) 벼슬을 내렸다 역신(疫神)이 처용의 아내를 흠모하여 밤에 몰래 안방에 들어가서 동침을 하였다 역신에게 아내를 빼앗긴 처용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역신이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며 처용의 그림만 봐도 안방에 침범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백성들은 처용의 화상을 걸어 사귀를 물리치고 좋은 일을 불러들였다 처용이 부른 노래가 처용가(處容歌) 라고 하고 처용이 추던 춤을 처용무(處容舞) 라고 한다 헌강왕이 개운포에 지은 사찰을 망해사(望海寺) 라고 한다 48대 경문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의 주인공이자 49대 헌강왕, 50대 정강왕, 51대 진성여왕의 아버지이다 진성여왕은 음란하여 색욕에 빠져 기강이 무너졌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와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출연하여 후삼국 시대가 도래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향가특집 #처용가 #처용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5 오대십국 '화예부인') 우리 부자가 사십년을 풍족하게 병사를 길러왔지만 일단 적을 만나니 동쪽을 향해 화살 한 발 쏘지 못하는구려! 후촉(後蜀)의 마지막 황제 맹창(孟昶)의 황후인 화예부인(花蕊夫人)이 송(宋)나라 조광윤의 공격에 탄식하며 남긴 시조이다 화예부인은 오대십국 시대 후촉의 여류시인이자 문인으로 혜비 서씨(慧妃 徐氏)라고 부른다 후촉은 후당의 장군 맹지상(孟知祥)이 반란을 일으켜서 건국된 오대십국 중 오대의 마지막 왕조이다 맹지상이 즉위 1년 만에 사망하자 3남 맹창이 2대 황제로 즉위했다 조광윤이 송나라를 건국하여 후촉을 공격하여 정복하고 맹창을 살해했다 군왕이 성 위에 항복 깃발 세웠다지만 첩은 깊은 궁에 있어 알 길이 없었네. 14만 명이 모두 갑옷을 벗었다 하니 남아는 하나도 없었던 것인가! 화예부인이 조광윤에게 끌려가서 망국의 한을 읆은 시이다 화예부인은 조광윤의 후궁이 되어 조광윤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하고 자결했다 '꽃으로 그 모습 비교하기 부족하고 꽃술로 그 용모 형용하기 부족하다' 라고 평가받고 있다 시조보다 더 시인이 아름답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오대십국 #화예부인
광고 2026여수섬박람회
2026여수세계섬박람회
AD
여수시
광고 중년 남성 전문 쇼핑몰 인기제품
50대~60대 중년 남성 전문 쇼핑몰
AD
엄사장몰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향가 특집 / 1 제망매가) 제망매가(祭亡妹歌) / 월명사(月明師)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는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 딱아 기다리겠노라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월명사(月明師)가 사천왕사에서 죽은 누이동생이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가기를 기원하며 재(齋)를 올리며 부른 노래이다 제망매가를 부르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제단에 놓인 지전(紙錢)이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월명사(月明師)는 신라 경덕왕 때 승려로 미륵불을 섬기는 화랑이자 향가 작가이다 피리를 잘불어 달밝은 밤에 피리를 불고 사천왕사의 앞길을 지나가면 하늘의 달도 걸음을 멈추고 피리소리에 넋을 잃었다고 전한다 사천왕사는 경주시 배반동 낭산(狼山)에 있었던 국찰이다 당나라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 하자 신라 문무왕이 부처님의 힘으로 당군을 물리치기 위해 사천왕사를 건축했다 지금은 남북 105m 동서 73m 절터만 남아 '사천왕사지' 라고 불린다 760년 4월 초하루에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나타나 열흘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자 백성들이 불안하여 동요했다 월명사가 경덕왕의 요청으로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부르자 괴변이 사라졌다고 전한다 도솔가(兜率歌) / 월명사(月明師) 오늘 이곳 궁궐에서 산화(散化)의 노래를 부르면서 푸른 구름 저 멀리 한 다발 꽃을 보내나니 은근하고 곧은 마음을 시켜 도솔천 저 멀리 미륵보살님을 모셔 오소서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향가특집 #제망매가 #월명사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향가 특집 / 4 헌화가) 헌화가(獻花歌) / 노옹(老翁) 자줏빛 바윗가에 잡고 있는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신라 성덕왕 때 경덕왕의 장인인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임명됐다 순정공의 부인인 수로부인이 남편과 함께 강릉으로 가는 길에 천 길 높이의 바위 위에 만발한 철쭉꽃을 발견했다 수로부인은 '꽃을 꺾어다가 줄 사람은 없느냐?'며 꽃을 원했다 관리들이 '거기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 노인이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벼랑에 핀 꽃을 꺾어 노래까지 지어서 바쳤다 그러나 늙은 노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그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구워서 먹을 테다 순정공이 강릉으로 가던 중에 동해 용이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순정공이 해가(海歌)를 부르자 용이 부인을 돌려주었다 수로부인은 용궁에 다녀온 이야기를 꿈꾸듯이 하였다 한없이 맑은 공기가 요샛말로 하면 그 공기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 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 한없이 친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 알고 또 느낄 수 있음 따름이었다 *수로부인의 '헌화가'를 모티브로 서정주 시인이 쓴 '노인 헌화가'의 말미이다 산이 산이 아니고 절이 절이 아니고 산 밖에 산이 있고 절 밖에 절 있느니 절벽에 올라 꽃 꺾어 오라시던 당신의 말씀, 그것이 정녕 꽃이었던가. 기르던 소의 고삐를 놓아야만 새처럼 날 수 있는 그 길, 그것이 필시 벽이었던가. *서정주의 '노인 헌화가'를 모티브로 오세영 시인이 쓴 '노인 헌화가'의 말미이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향가특집 #헌화가 #수로부인
(서일환의 역사 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1 초나라 '굴원') 초나라는 제나라와 합종을 맺었다 진나라가 뇌물과 미녀로 유혹하자 초나라는 제나라와 친교를 끊고 진나라와 친교를 맺었다 제나라는 한나라 위나라와 합종하여 초나라를 공격했다 진나라가 초나라의 태자를 인질로 삼고 공격하자 제나라 한나라 위나라 3국은 후퇴했다 초나라 태자가 진나라에서 탈출하여 귀국했다 진나라가 역으로 제나라 한나라 위나라 3국과 친교를 맺고 고립무원의 초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는 태자를 제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다시 친교를 맺었다 진나라 소양왕이 배신을 일삼는 초나라 회왕과 회견을 요청했다 회왕은 굴원(屈原)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내 아들 자란(子蘭)의 요청으로 진나라에 갔다가 억류됐다 초나라는 회왕은 진나라에, 태자는 제나라에 억류되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제나라의 계략으로 태자는 귀국하여 경양왕(頃襄王)으로 즉위했다 초나라 회왕은 진나라에서 탈출하다가 붙잡혀서 병사했다 초나라 경양왕은 아우 자란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굴원은 초나라 회왕을 진나라로 보낸 자란을 미워했다 자란은 경양왕에게 굴원을 참소하여 강남으로 추방했다 노래 끝에 이르기를 나라에 사람 없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어찌 또 고향을 그리워하랴? 아름다운 정치를 함께 할 수 없으니 이제 나는 팽함(彭咸)이 사는 곳으로 가련다. *굴원이 남긴 시 '이소(離騷)'의 마지막 장이다 굴원은 초나라 회왕을 그리워하며 '이소'를 남기고 돌맹이를 몸에 안고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했다 굴원이 사망하고 얼마 후 진나라 진시황은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을 통일했다 항량이 초나라 회왕의 후손을 초의제(楚義帝)로 옹립했다 초의제는 진시황제 진이세황제에 이어 중국에서 세 번째로 황제가 되었다 항량이 사망하자 항우가 초의제를 섭정했다 항우가 초의제를 살해하자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정벌했다 초한전쟁에서 유방이 승리하여 중국은 재통일됐다 김종직이 초나라 항우에게 살해당한 초의제를 수양대군에게 살해당한 단종에 비유하여 추모한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남겼다 김일손이 조의제문을 성종실록 사초에 실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일으켜서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김일손은 처형됐다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에 가서 물고기 뱃 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하니 어부는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 부르면서 떠나갔다. 곧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하고 마침내 떠나가 다시 함께 이야기하지 못했다 *굴원이 남긴 '어부사(漁父辭)'의 일부이다 굴원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왕족이자 위대한 시인이며 불운한 정치가이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굴원
[역사 속 전라도] 인헌왕후의 관향, 263년 목사골 '능주' 능주(綾州)는 화순 지역의 옛 지명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고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출토됐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다. 근초고왕 때 백제에 복속되어 분지라는 뜻으로 이릉부리(爾陵夫里)라고 불렸다. 757년 신라 경덕왕의 한화정책으로 능성군(陵城郡)으로 개칭됐다. 1143년 고려 인종 때 현령이 파견됐고, 나주와 순천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이자 군사요충지로 발전했다. 능주는 조선의 건국과 임진왜란으로 화순군과 병합됐었다가 분리되기를 반복했다. 1632년 인조 때 정원대원군의 왕후이자 인조의 생모인 인헌왕후 구씨(具氏)의 관향이라 능성현에서 능주목(綾州牧)으로 승격했다. 1895년 전국을 23부제로 개편하자 나주부 관할 능주군이 되었고 1896년 전국을 13도제로 환원되자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편입됐다. 1914년 능주군과 화순군이 통합되어 화순군이 되었다. 능주목, 13도제로 개편되어 화순군으로 편입 화순군(和順郡)은 전라남도 중앙부에 있는 군으로 1읍 12면에 6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1963년 화순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2020년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북면을 백아면, 남면을 사평면으로 개칭했다. 국립공원 무등산이 솟아있고 영산강과 섬진강의 지류가 흐른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화순적벽(和順赤壁)은 명승 제112호로 지정됐다. 조광조(趙光祖)는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김굉필에게 수학하여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성리학적 도학정치를 구현하려 소격서 폐지와 위훈삭제 등을 주창했다. 조광조는 훈구파들이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전라도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37세에 사사됐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됐고 문묘(文廟)에 종사됐다. 조광조는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등과 함께 '동방 5현'이라 일컫는다. 최경희(崔慶會)는 전라도 능주 출신의 기대승의 문인이자 의병장이다. 담양부사로 재직 중에 모친상을 위해 능주로 낙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1차 진주대첩의 승리를 이끌었고 2차 진주대첩에서 패배하고 자결했다. 주논개(朱論介)는 조선의 열녀이자 최경회의 후실이다. 진주성 전투의 축하연을 하던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투신하여 순국했다. 인헌왕후의 관향, 능주목으로 승격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은 선조의 아들이자 인조의 생부이다. 인조실록에 "성품이 포악하고 행동이 방탕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과 탄핵을 받았다"라고 기록됐다. 아들이 인조반정으로 즉위하자 대원군에 이어 추존왕 원종(元宗)으로 추존됐다. 인헌왕후 구씨(具氏)는 종1품 좌찬성 구사맹의 딸이자 정원대원군의 부인이며 인조의 생모이다. 정원대원군이 원종으로 추존되자 인헌왕후로 추존됐다. 16대 인조는 선조의 손자이자 정원군의 아들이며 숙부 광해군을 폐위하고 즉위했다.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으로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까지 도망갔다. 친명배금 정책으로 후금이 침략하자 강화도로 도망갔다. 홍타이지가 후금을 청나라로 개칭하고 병자호란을 일으키자 남한산성으로 도망가서 49일 만에 항복하고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지금도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와 며느리 강빈의 독살 의혹을 받고 있다. 주자묘(朱子廟)는 화순군 능주면 덕천리에 있는 건축물이자 주자를 주향으로 모신 사당이다. 주자(朱子)는 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의 존칭이며,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여 주자학을 완성시켰다. 주잠(朱潛)은 주희의 증손자로 고려에 귀화한 신안 주씨(新安 朱氏)의 시조이며 고려에 주자학을 전래했다. 주자묘 1905년 신안 주씨 문중에서 건축했고 1978년 증축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역사속전라도 #능주목 #화순군 #인헌왕후 #정원대원군 #조광조 #광주드림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꽃뱀과 제비) 꽃뱀은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몸을 맡기고 금품을 우려내는 여자'를 말한다 꽃뱀은 사랑이 아닌 금품을 목적으로 관계를 맺고 성추행으로 신고를 하겠다거나 결혼을 전제로 관계를 맺고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는 경우가 많다 꽃뱀은 천하절색도 절세미인도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생긴 여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골프연습장에서 레슨을 요구하고 골프장 다녀와서 금품을 빼앗긴 남자를 풀뱀에게 물렸다고 한다 좌우간 꽁짜 좋아하는 사람 말로는 비참하다 제비족은 돈 많은 여성에게 접근하여 성적 유혹을 하고 돈을 갈취하는 젊은 남자'를 말한다 연하의 내연남이라는 일본말 '若(わか)い)つばめ'에서 유래했다 일부에서 춤추는 남자의 연미복이 제비꼬리를 닮아 유래했다고 한다 제비족은 북한의 꽃제비나 남한의 스폰서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북한의 꽃제비는 부랑아를 지칭하는 말로 거지나 노숙자에 해당된다 남한의 스폰서는 금전적 지원을 하고 성상납을 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이다 꽃뱀은 애교로 남자를 파멸시키고 제비는 피땀으로 여자를 짓밟는다 요즘은 꽃뱀이나 제비족 못지않게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이스피싱은 전화를 걸어 송금을 요구하거나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범죄를 말한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꽃뱀 #제비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향가 특집 / 5 원왕생가) 원왕생가(願往生歌) / 광덕(廣德) 달님이시여 서방정토까지 가시려는가 무량수 부처님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 깊으신 부처님에게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옵소서 아아, 이 몸 남겨두고 마흔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 원왕생가(願往生歌)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죽어서 극락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광덕(廣德)이 지은 향가이다 삼국유사에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의 배경설화와 함께 원왕생가의 원문이 수록됐다 광덕과 엄장은 절친한 친구로 함께 출가(出家)하여 수도에 전념하는 비구(比丘)이다 광덕은 아내와 함께 신을 삼으며 살았고 엄장은 화전을 경작하고 살았다 두 사람은 서방정토(西方淨土)에서 다시 태어나자고 굳게 약속했다 광덕은 저녁마다 죽어서 극락에 가기 위해 16관(十六觀)을 행하다가 먼저 사망했다 광덕의 아내는 엄장의 도움을 받아 남편의 유해를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장례가 끝나자 엄장이 광덕의 아내에게 동거를 요청하자 광덕의 아내가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엄장은 밤이 되자 광덕의 아내를 찾아와서 정을 통하려 하였다 광덕의 아내는 정색하며 '광덕이 평소 정좌하고 불도를 닦으며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다 정토(淨土)에 가는 것은 나무 위에서 물고기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 라며 엄장을 엄중하게 꾸짖었다 엄장은 부끄러워 물러나 원효법사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간청했다 엄장은 쟁관법(錚觀法)을 배워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한마음으로 관을 닦으니 역시 서방정토로 가게 되었다 부인은 관음의 19응신(應身)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향가특집 #서원왕생가 #광덕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향가 특집 / 3 서동요) 서동요(薯童謠) / 무왕(武王)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통정해 두고 맛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 때 과부인 어머니가 서라벌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던 중에 연못의 용(龍)과 정을 맺어 태어났다 서동은 총명했지만 가난하여 마를 캐서 팔아 살았다 서동은 진평왕의 셋째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었다 서동은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헛소문의 노래를 퍼뜨렸다 서동은 마를 캐며 나온 금을 진평왕에게 보내 사위로 인정받았다 서동은 진평왕으로 도움으로 백제 30대 무왕으로 즉위하여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했다 백제 30대 무왕은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수나라와 당나라와 화친했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익산에 미륵사를 조성했다 아들 의자왕은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 라고 불렸으나 나당연합군에 패배하여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 신라 26대 진평왕은 진흥왕의 손자이자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진평왕은 만덕공주 천명공주 선화공주 등을 낳았다 진평왕의 후궁인 미실궁주는 수많은 영웅호걸을 뛰어난 미색으로 사로잡아 역대급 불륜을 자행했다 첫째 딸 만덕공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이다 둘째 딸 천명공주는 만덕공주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김춘추를 낳았다 셋째 딸 선화공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되어 서동과 혼인하여 백제왕비가 되었다 무왕이 연못에 미륵삼불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있는 미륵사를 창건했다 미륵사는 익산 용화산의 남쪽에 자리잡고 백제의 사찰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미륵사지 석탑은 한국에 남아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국보 제11호로 지정됐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향가특집 #서동요 #서동왕자 #선화공주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2 위나라 '조식') 조조는 난세의 간웅(奸雄)으로 평가받는 후한의 마지막 승상이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로부터 위왕(魏王)에 봉해졌다 한나라는 한고조 유방(劉邦)과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은 왕(王)이 될 수 없으나 조조만 위왕이 되었다 조조는 9명의 부인으로부터 아들 25명과 딸 6명을 낳았다 정실 정씨가 요절하자 측실 변씨가 정실이 되었다 정씨가 낳은 조앙과 조삭이 변씨의 양자로 입적했으나 요절했다 조조는 변씨와 사이에 조비 조창 조식 조웅 등을 낳았고 측실 환씨가 낳은 조충을 후계자로 생각했으나 조충이 요절했다 조조는 조비를 왕세자에 책봉했고 두 명의 딸을 헌제에 시집보내 황제의 장인이 되었다 조비(曹丕)는 조조의 아들이며 아버지의 죽음으로 위왕의 자리를 승계했다 조비는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로부터 강제로 양위를 받아 위나라의 초대 황제로 즉위했다 조비가 원소의 며느리를 약탈하여 첩으로 삼아 낳은 조예(曹叡)가 2대 황제로 승계했다 콩을 삶아 콩국 끓이네(煮豆燃豆萁) 콩물을 걸러 즙을 만드네(漉菽以為汁) 콩깍지는 솥 아래 타고 있고(萁在釜下然) 콩은 솥 안에서 눈물짓네(豆在釜中泣) 본래는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本自同根生) 서로 지지기가 어찌 이리 급한가(相煎何太急) 조식(曹植)은 조조의 아들이며 위나라 초대 황제 조비의 동생이다 조조가 조식에게 출동 명령을 하였으나 조비가 조식에게 술을 취하게 하여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여 후계자에서 멀어졌다 조비가 장자 계승 원칙에 따라 황제로 즉위하여 조식을 죽이기 위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어 읊으라고 하였다 조식은 7보의시(七步之詩)를 읇자 목숨을 살려주었으나 박해를 계속했다 조식은 황위를 놓고 형 조비와 경쟁하다가 패배했다 조비에 이어 조예가 황위에 올라 숙부인 조식을 대를 이어 핍박했다 조식은 황도를 벗어나 시골에서 생활하며 좌절과 불행을 주제로 많은 시를 남겼다 조예(曹叡)는 위나라의 2대 황제로 조조의 손자이자 조비의 아들이다 아버지 조비가 어머니 견씨를 살해하자 오로지 독서에만 몰두했다 조비의 고명에 따라 2대 황제로 즉위하여 어머니 견씨를 문소황후로 추존했다 보지 못했는가, 울타리의 참새들 새매 보고 스스로 그물에 걸리는 것을 그물 친 사람 새 얻고 좋아하나 소년은 새보고 슬퍼하나니 칼을 뽑아 그물을 끊어주니 참새는 자유로이 훨훨 날아간다 훨훨 푸른 하늘에 닿아 내려와 소년에게 감사하는구나 *조식이 남긴 야전황작행 / 野田黃雀行 으로 자신의 현실을 들판의 참새에 비유한 시조이다 콩은 콩나물이 되기도 하고 콩나무가 되기도 하고 두부가 되기도 하고 된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콩국수 콩반찬 콩가루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 될까?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위나라 #조식
[역사 속 전라도] 호남의 정자① 화순 물염정(勿染亭)과 김삿갓 화순은 삼한시대 마한과 삼국시대 백제에 속했고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화순, 능주, 동복 지역이 폐현과 복현을 반복했다. 1632년 인조반정 직후 인조의 생모인 인헌왕후의 관형이라 능주가 목으로 승격했고 1914년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부활했다. 화순군은 인구 4만여 명이 거주하는 광주광역시의 위성도시로 너릿재로 연결됐고 무등산 국립공원이 솟아있고 영산강과 섬진강이 흐른다. 너릿재는 광주광역시 동구와 화순군 화순읍 사이에 잇는 고개로 너릿재터널과 신너릿재터널이 있다. 광주와 화순, 보성, 장흥, 고흥을 연결한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처형된 농민군의 널을 끌고 지나가서 너릿재가 되었다고 전한다. 기묘사화로 조광조의 유배지로 가던 길이고, 기축옥사로 조대중이 처형된 곳이다. 1946년 노동자가 미군에 학살된 곳이며, 1980년 시민군들이 계엄군에 의해 학살된 곳이다. 화순적벽, 중국 적벽에 버금간다 화순적벽(和順赤壁)은 동복천의 상류인 창랑천에 있는 크고 작은 절벽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기암절벽이다. 기묘사화로 신재 최산두가 동복으로 유배 와서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서 이름을 따서 중국 후베이성 자위현에 있는 양쯔강 중류의 적벽(赤壁)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화순적벽이라 명명했다. 화순적벽은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으로 구성됐다. 최산두(崔山斗)는 전라도 광양에서 북두칠성의 광채를 띠며 태어나서 산두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버지는 정2품 한성판윤 최한영이고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문과에 급제하여 정4품 사인(舍人)으로 승진하여 기묘사화로 동복으로 유배되어 유배지에서 김인후와 유희춘에게 사사를 받았다. 문장이 뛰어나 유성춘(柳成春) 윤구(尹衢)와 함께 '호남삼걸(湖南三傑)'이라 하였다. 화순적벽은 1985년 동복댐 완공으로 노루목적벽 일부가 수몰됐고 상수원보호 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다. 또한 30여 개의 정자 중에서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을 제외하고 모두 수몰됐다. 최근 사전예약제로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일부를 개방하고 있다. 화순적벽은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12호로 지정됐고 화순 8경 중에서 제1경으로 손꼽히는 절경이다. 물염정,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마라 송정순(宋廷筍)은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구례현감, 풍기군수 등을 지냈다. 사색 당쟁이 시작하자 화순 동복으로 낙향하여 물염적벽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 언덕에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마라'라는 뜻으로 물염정(勿染亭)을 짓고 여생을 마쳤다. 물염정을 중수하며 다듬지 않은 배롱나무 기둥을 그대로 사용했다. 물염정은 송정순이 외손자인 나무송,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주어 보존하고 있다. 김병연(金炳淵)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 난 당시 투항한 죄로 멸문지화를 당했다. 김병연은 강원도 영월에서 열린 별시에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를 써서 장원으로 급제했다. 김병연은 조상을 모욕한 자책으로 벼슬을 포기하고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여 김삿갓이라 불렀다. 김병연은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며 방랑했던 방랑을 멈추고 화순 물염정에서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역사속전라도 #호남의정자 #화순적벽 #물염정 #광주드림이글 #광주드림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보응우옌잡)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으며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았으며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 보응우옌잡은 1961년 프랑스에 승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민의 전쟁, 인민의 군대'를 집필하여 '3불정책'을 소개했다 보응우옌잡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꽝빈성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성장한 성리학자이다 보응우옌잡은 프랑스에 유학가서 학생시위를 주도하여 퇴학을 당하여 귀국했다 베트남청년혁명당에 가입했고 학생파업을 지지하여 프랑스 경찰에 체포됐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도피했고 부인은 종신형을, 처제는 처형됐다 보응우옌잡은 중국 윈난육군강무학교에 입학하여 군사전략을 배웠고 호찌민과 함께 베트남 독립동맹회를 조직했다 베트남은 일본군에 이어 프랑스군과 게릴라전을 하였고 미국은 일본에 승리하기 위해 베트남 독립동맹회를 지원했다 1945년 9월 2일 베트남 민주 공화국 건국을 선포하자 프랑스가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프랑스가 하이퐁에 이어 하노이에 입성하자 게릴라전을 통해 후방에서 프랑스군을 교란작전을 벌였다 베트남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미군의 지원을 받은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였다 1953년 프랑스군은 라오스와 국경지대에 있는 디엔비엔푸에 최정예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방어기지를 만들었다 1954년 3월 13일 보응우옌잡은 프랑스의 디엔비엔푸 요새를 공격하여 프랑스 군대를 물리쳤다 베트남은 프랑스의 항복으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승리하여 80년 만에 프랑스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됐다 1954년 제네바협정으로 북위 17도선을 따라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미국은 고딘디엠을 앞세워 남베트남공화국을 수립하여 북베트남과 대립했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북베트남민주공화국은 1975년 4월 30일에 미국, 베트남공화국을 물리쳤다 무력으로 남북통일을 이룩하여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했다 베트남 전쟁을 2차 인도차이나 전쟁 또는 월남전(越南戰) 이라 한다 보응우옌잡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부수상, 국방부장관, 북베트남군 참모총장을 겸임했다 2013년 향년 102세로 사망하자 베트남 정부는 국장(國葬)을 거행했다 보응우옌잡의 '3불정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보응우옌잡 #베트남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4 당나라 '설도') 춘망사(春望詞) / 설도(薛濤) 꽃 피어도 함께 즐길 리 없고 꽃 져도 함께 슬퍼할 리 없네. 묻노니 그대는 어디 계신고, 꽃 피고 꽃 질 때에 풀을 뜯어 한마음으로 맺어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봄날의 시름 그렇게 끊어 버렸건만 봄새가 다시 슬피우네 꽃은 바람에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 가네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 나뭇가지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눈물이 주르르 아침 거울에 떨어지네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당나라의 여류시인 설도(薛濤)가 11살 연하의 시인 원진(元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인생은 덧없이 흘러가지만 만날 수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설도는 원진을 사랑하여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설도는 장안에서 태어나서 아버지를 따라 촉나라의 수도였던 성도(成都)로 옮겼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음률에 능통하여 8세에 시를 지었다 설도는 14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16세에 기녀가 되었다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위고(韋皐)가 설도의 재능을 평가하여 황제에게 비서성(秘書省)의 교서랑(校書郞) 직을 주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인들은 설도를 설교서(薛校書) 라고 불렸다 설도는 백거이 두목 유우석 원진 등 시인들과 교우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1945년 설도의 '춘망사' 3연을 김억이 번역했다 김성태가 작곡하여 권혜경이 가곡 '동심초(同心草)'를 불렀다 동심초는 이별이 아니라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는 사랑의 굳은 약속이다 김억은 천재시인 김소월의 스승이고 권혜경은 가요 '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이다 이별은 슬프지만 시는 아름답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당나라 #설도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 중국의 시인 특집 / 3 동진 '도연명') 歸去來辭(귀거래사) / 도연명 논밭 장차 황폐해지거늘 어이 아니 돌아가리. 지금껏 내 마음 몸의 부림 받았거니,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는가?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으니, 이에 앞으로의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도다. ~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어보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본다. 이렇게 자연을 따르다 끝내 돌아갈 것인데, 천명을 즐겼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위진남북조 시대에 동진(東晉) 말기부터 유송(劉宋) 초기까지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 도연명(陶淵明)이 남긴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일부이다 도연명은 벼슬을 얻어 심양군(尋陽郡)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으로 재직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갔다 도연명은 심양군(尋陽郡)에서 팽택현(彭澤縣)으로 시찰 온 하급관리에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 쏜가" 라며 출세를 포기하고 전원으로 돌아가서 시를 써서 도연명집(陶淵明集)을 남겼다 동진(東晉)은 사마염이 건국했던 서진(西晉)이 흉노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자 사마예가 강남(江南)에 세운 왕조이다 유송(劉宋)은 남북조 시대에 유유가 강남에 세운 남조의 첫 번째 왕조이다 팽택현(彭澤縣)은 현재의 장쑤성(江西省) 지역이다 도연명은 술을 좋아하고 국화를 사랑했고 유교와 노장사상을 흡수하여 쉬운 말로 시를 썼다 동진의 조정으로부터 운둔지사에게 주어지는 좌저작랑(佐著作郞)의 관직을 받았다 무릉도원을 추구하다가 62세에 사망했다 무릉에 사는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만발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속에 있던 아름다운 마을에서 며칠간 머물다가 돌아왔다 다시 선경(仙境)을 찾았지만 두 번 다시 찾지 못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내용이다 오늘의 삶과 현실이 무릉도원인지 생지옥인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서일환의역사야톡 #서일환의역사이야기 #첨단재활요양병원 #중국의시인특집 #동진 #도연명
1234
다음 글 보기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운영정책 청소년보호정책
카카오스토리 공식채널 앱스토어 ⓒ Kakao Corp.
'역사이야기, 고사성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가당착[自家撞着] (0) | 2022.10.03 |
---|---|
서일환의 역사이야기/ 육군사관학교 (0) | 2022.10.03 |
자가당착[自家撞着] (0) | 2022.10.02 |
세태염량[世態炎凉] (0) | 2022.10.01 |
서일환의 [역사 전라도] 호남싀 정자 1화순물영정(勿染亭)과 김삿갓 (0) | 2022.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