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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 산꼭대기 오지마을.. 부끄러워서 씁니다

인주백작 2021. 4. 23. 07:23

지리산 자락 산꼭대기 오지마을.. 부끄러워서 씁니다

김키미 입력 2021. 04. 22. 09:42 수정 2021. 04. 22. 11:51

 

강의 최상류는 개발로 인한 파괴로부터 거의 무방비 상태

 

[김키미 기자]

  굉음과 함께 흙탕물이 흘러 내려오고 있는 물줄기. 국가가 공익을 위해서라도 함부로 원형을 훼손할 수 없는 하천을

개인이 무허가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 김키미

 

여기는 지리산 자락 산꼭대기 오지마을입니다. 진달래가 막 지고 연달래가 한창입니다. 오리나무 향기가 걸음을 멈추게

하고 병꽃나무가 만개했어요. 아직 남은 산벚꽃이 흩날리는 아래 어린 나무 그늘이 자라납니다. 땅에는 노오란 피나물꽃

과 양지꽃, 색색의 제비꽃들에 이어 원추리와 둥굴레가 난초마냥 꽃대 올리기 전 아름다운 선을 이어가고 있는 그야말로

봄의 한가운데입니다. 

 

제가 살러 오기 훨씬 전에 당산나무가 자연히 쓰러져버렸다 들었지만 '아, 우리 마을에는 이 귀한 물줄기가 당산나무 가

지처럼 넓게 마을을 보듬어 살피는구나' 마음 놓일 만큼 물의 고마움이 닿지 않은 땅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일곱

샘에서 솟아 나온 물을 나누어 마시니 참으로 신비로운 물입니다.

 

고갯마루 논자리였다는 습지에서 계곡이 시작되어 멀지 않은 곳에서 폭포 소리가 들려오니 참으로 사람이 살아감이 자

연에 해가 되지 않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부끄럽지않은 삶이란 내가 떠나면 나의 자리가 사라지는 소박한 삶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동학도 6.25도 닿지 않았다는 오지마을, 지리산의 삼대 은신처 가운데 하나인 우리 마을에도 자본의 이기, 개발은 일어나

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자 하니 땅도 고르고 산골집은 이제 손색없이 단단하여 빈집에 젊은이들이 들어오는 반가운 소식

도 들려옵니다. 논농사는 잠시 끊어졌지만 논이 밭이 되어 취나물이나 고사리를 재배하며 부지런한 마을 분들, 비닐하우

스도 두어 개 들어서고 있지만 자연을 헤치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을 고유의 정서입니다.

 

임도사업도 마을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멈췄고, 수목 갱신사업은 감히 이야기를 꺼낼 엄두도 못 내는 곳이 우리 마을입

니다. 마을을 지키는 이런 마음자세가 어디서 생겨났을까요. 은연중에 짐작하는 바가 있어요.

 

마을 어귀 소나무 동산에 이르기 전 외따로이 서있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 마을로

올라오는 산길에 시멘트 포장을 하며 나무를 베어내고 있을 때였겠지요. 그때만 해도 환경보호라는 말이 있었을까요. 온

산에 가득한 것이 소나무이구요. 왜 그러셨는지 인부들에게 당시 돈 삼십 원을 희사하며 이 나무는 살려주게 하신 것이

그 이씨 할아버지 소나무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연입니다.

 

저는 이씨 할아버지가 산에서 살아가는 마음자세를 느낄 수 있었어요. 자신의 집마당 안의 나무가 아니어도 소중히 가꾸

며 나무 한 그루 함부로 대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마을 어귀에서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생

각합니다. 제 마음속의 당산나무입니다. 

 

시커멓게 흘러내려오는 흙탕물

 

 아예 포크레인이 하천에 들어가 작업합니다. 바닥을 긁어내고 삼단 축대를 쌓으며 하천폭이 늘어났습니다.  ⓒ 김키미

 

여느 봄날과도 같이 산책을 나섰지요. 작은 언덕 너머로 내려오자니 공사소음이 골을 메우는 소리가 가까워졌어요. '사람

이 먹고사는 일이 이렇게 미안한 것이다.' 어서 지나가려던 마음은 시커멓게 흘러 내려오는 흙탕물을 보고 어느결에 진원

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요. 
     
높게 쌓은 축대 위에 새로 지은 정자에 앉아 포크레인이 하천에 들어가 바닥을 긁어내는 작업을 감시하던 주인분에게 결

례를 구하며 지금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지 여쭈며 본 광경은 끔찍했습니다. 

 

운영하는 숙소 곁으로 흐르는 하천을 포크레인으로 마음껏 긁어 하천 폭이 넓어져 버렸고, 몇 단으로 제방을 쌓아 올리

고 물을 가두며 정원처럼 꾸미면서도 당당하게 홍수를 대비하고자 멀리서 돈을 주고 돌을 사 와서 메꾸고 있다던 분이

부끄러웠어요.

 

더불어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산을 사랑하면 산에 오르지 말라고 한 어르신의 말씀을 이제서야 알아차렸습니다.

산이 좋아 산에 살고자 하면 산을 닮아가며 살아야 했던 것을 저는 편리를 내려놓지 않고 그저 경치를 누리고 살고 있었

구나 처음 인정하였습니다.

 

민원이 두려워 몇백 미터를 따라오며 제게 하신 말씀들이 모두 거울처럼 느껴져 부끄러웠습니다. 하수처리시설이 없는

오지마을의 생활폐수와 농약이 이곳 최상류로부터 흘러내리고, 저 아래 계곡에서 아이들이 노는 계절이 돌아오지만, 저

는 더 높고 깨끗한 물놀이터를 찾아야지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가 다를 것이 없어요.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환경을 파괴하겠다 마음먹고 파괴하는 분들이 없으시리라 믿어봅니다만 그것을 편의와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보다 큰 폭력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고방식이 그대로 사회에서는 지배방식으로서의 약자에

게로의 폭력이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 흙탕물을 뒤집어쓴 지리산의 봄 ⓒ 김키미 

 

 

저는 지방하천의 관리를 담당하는 지자체 해당 부서에 민원을 제기하였습니다. 하천은 개인이 함부로 사유화하거나 변

형·훼손할 수 없도록 '하천법'으로 보호받고 있기에 담당자는 서둘러 현장을 방문하여 공사를 멈추겠다고 하시며 고맙다

고 해주셨어요. 민원이 처리되는 과정은 신속했고, 민원 처리 결과를 받아보았습니다.

 

하천 훼손에 관한 원상 복구

 

"원상복구 처분을 내릴 예정입니다."

아! 날이 일찍 더워져 복구가 시작되면 고생하시는 분들께 시원한 물이라도 싸가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 여쭈었어

요. 복구는 어떻게 진행될까요? 행위자가 원상복구를 하면 담당이 방문하여 검토하게 된다는 여기서부터 저는 이틀 내리

전화통을 붙잡게 됩니다. 

 

원형을 훼손한 것은 원형 보존에 대한 인식·의지가 없기에 일어난 것인데 어째서 행위자가 자율적으로 원상복구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어요. 가이드라인이나 복구 현장에 생태전문가가 참관하는 등의 절차는 전연 없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어요.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치유하라는 것과 같이 부당한 것이지 않습니까. 

 

결국 민원실을 통해 연결된 지자체 안전관리과 담당자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 더는 알지 못한다고 죄송하다며 환경

청에 문의해보라고 하셨고, '원상복구에 대한 기준이 있는가요?' 하는 제 질문에 답해줄 분을 찾아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

영산강유역환경청으로 전화번호를 넘겨주는대로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 닿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지방하천을 관리

하는 곳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았어요.

 

기왕에 국가하천 훼손에 관한 원상복구에 대해 알 수 있다면 비교라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뭐라도 배우겠다는 심정으로

담당자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너무나 답답하여 환경운동연합에 사례와 대안을 요청했어요.

 

하루가 너덜너덜 저물었더라구요. 그래! 거대한 천을 잇는 것은 작은 바늘이잖아. 나는 바늘같은 시민이 된 거라고 기다

리는 답변에 희망을 걸어 기우는 심정이었어요. 시민 한 사람이 민원과 이의를 제기해 얻을 수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최종

적인 답변을 찾겠다 마음먹었고 귀한 배움을 마름질하여 보았습니다. 

 

지방하천의 경우 원상복구에 대한 기준이 없었습니다. 산신령이 보우하신 모니터링과 기록자료가 없다면 원상복구는 훼

손 행위자에 의해 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원형을 확인할 길 없는 담당자가 방문하여 절차적 검토를 하고 종료될 뻔했으

나 다행히 이번 경우는 사유지와 하천의 경계를 측량하여 만전을 기하겠다는 지자체 담당자의 변경된 답변을 받았습니

다. 

 

환경단체를 통해 이러한 사례가 만연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며 '사유지 안에 속한 하천의 경우 축대 등을 쌓아 폐하천으로

신고하면 용도변경을 하고 지자체심의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한다'는 더 악의적인 사례도 빈번하다 토로하셨습니다. 없다

고 들었지만 환경부에서 간행하는 '생태하천 복원 기술지침서'라는 것을 근거·제시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부끄러워서 씁니다

 

  그토록 바라던 지리산 사람이 되었지만 막상 저의 산골생활은 에너지자립도 0%였습니다. 제가 사용한 물이 여과 없

이 그대로 하천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다짐을 했었어요. 다만 세제나 화학비료, 제초제를 쓰지않고 물을 아끼는

등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부분과 대책을 요구하고 정부와 기업을 주시하며 민원이나 모니터링, 정당과 시민단체 활동과

같이 시민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 소비자로서 기업에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제품을 생산할 것을 요구하며 영향력

있는 소비활동을 하는 것 등에 대한 분리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더 적극적인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

이 플라스틱 빨 대사용을 줄이는 것보다 플라스틱 빨대 제조와 사용에 대한 기업 규제를 국가에서 강화하는 것이 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하천 훼손에 대한 사건을 개인의 양심에 대해 묻는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규

제할 정책을 정부와 지자체가 보완.발전시켜 나가지 못한 것이기에 책임을 물어야 하겠습니다.  ⓒ @printearth
 

이것은 개인만의 과실일까요. 하천을 홍수피해 발생 가능구역이라며 하천 바닥을 긁고 시멘트로 싸서 굳혀 제방을 쌓아

정비라 부르는 국가에서 보여주신 그대로를 답습한 것은 아닐까요. 작은 하천을 범람지역과 물이 지나는 통로 정도로 생

각하는 것만 같습니다. 작은 하천 훼손에 대한 원상복구는 철저히 지형에 대해 명시할 뿐 훼손된 생태계를 회복하려는

시스템은 갖추어지지 못했습니다. 

 

강의 성스러운 시원인 최상류는 지금 개발로 인한 파괴로부터 거의 무방비 상태입니다. 산 아래 흐르는 위대하고 아름다

운 강의 근원인 이곳은 한 사람의 시민처럼 작아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단 한 사람의 시민이 지켜지지 못한다면 국

가가 온전할 수 없듯이 최상류를 보호하지 않고서 강을 지킬 수 없겠습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대안이 세

워지길 희망합니다. 

 

더불어 '민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본 기회였습니다. 민원은 시민의 적극적 참여라고 나름대로 정

의해봅니다. 개인에 대한 처분을 바라는 것이라기보다 국가에 이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고 방안을 요구하

는 시민의 권리와 의무이지요. 

 

많이 생각해보았어요. 미안했거든요. 어려운 시국에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고생하게 될 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관심과 침묵은 동조와 같기에 가만히 있질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4월이잖아요. 맞아요. 원상복구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는 불가능한 것이겠지요. 가라앉고 잃어버린 4월이기에 무의식적으로 저는 원상복구라는 이름에 매달려보았는지도 모르

겠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배워가 보고 싶어요. 다치지 않게 하려면,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아! 뒤늦게 이

제서야 떠오릅니다. 흙탕물을 뒤집어써야 했던 봄에게 나라도 미안하다고 해주지 않았구나. 산 아래까지 물을 따라 걸으

며 미안하다고 해주고 싶어요. 이대로는 무슨 낯으로 섬진강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자연은 생의 가장 아름다운 꽃소식을 전하는데 이 사람은 꽃이 없는 봄소식을 보내드리게 되어 어쩌지요. 강으로 태어난

수많은 생명의 탄생과 존엄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부끄러워서 씁니다.

 

덧붙이는 글 | 저의 서투른 문의 전화에 최선을 다해 답해주셨던 많은 분께 고맙습니다. 특히나 경기환경운동연합 서경

옥 선생님과의 진심 어린 대화에서 마음 가지 하나가 여문듯합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하동산악열차 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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