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옛날옛날 그옛날 우리들의 생활상

인주백작 2021. 3. 13. 06:46

옛날옛날 그옛날 우리들의 생활상

 

평양에서 영업중인 왕복 노면전차 -운임 5전-

1942년 흥남공업 도시
조선 질소비료공장 . 일본 마그네슘 . 조선광업 등

수풍 댐 수력 발전소
일제 강점기인 1937년에 만주국과 조선의

전력확보를 위해 건설이 개시되었다.
건설된 것은 압록강하류의 평안북도 신의주로

부터 80 km지점의 한만국경(현재는 중.북 국경).

담수면적은 일본 비와코의 거의 반에 상당해

총공비는 약 5억엔이다.
(이 금액은 동경에서 시모노세끼를 잇는

신칸센 건설 규모에 필적하는 금액이었다)

그 비용은 당시 한반도에서도 일대 중화학

기업인 조선질소비료 (현재의 질소/日チッソ-칫소)

가 부담했다.
태평양전쟁이 한참인 1944년 3월에 수풍수력

발전소(발전 능력 60만 kW)와 함께 준공했다.

이 발전 규모는 당시의 세계 최대급이며
1940년 당시의 일본내의 수력 발전 규모가

280만 kW와 비교해도 그 크기는 용이하게

비교할 수 있다.

7기의 발전기는 각각 약 10만 kW의 발전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은 당시 세계 최대급의 능력이며
설비제조를 수주한 회사는 동경시바우라

전기(현재의 토시바)에서 제조를 맡았으며
시공업자는 일본 하자마구미와 니시마쯔

건설(間組, 西松建設)이 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침공하여 총 7기의 발전기중

5기를 약탈해 갔다.

약탈된 발전기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이리티슈 카와카미류의

댐에서 확인되었다.

한국 전쟁중에 뇌격을 포함한
미군기의 공격을 받았지만 댐 구조가 워낙

견고했었기 때문에 파괴를 면했다.

전후에 북한은
발전 능력을 증강해 이 댐 덕에 부흥했다.

준공으로부터 60년 이상 경과한 현재도
댐 본체는 큰 개수 공사를 하지 않고

현역으로 활동 중에 있다.

사족(蛇足) :
북한의 국장에는 이 댐을 디자인한

도안으로 되어 있으며
또2009년 북한 중안은행발행 5원권 지폐

뒷면에 수풍댐의 사진이 그려져있다.

 

 

1940년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호텔 "조선호텔"

선룸무도가 崔承喜의 모습

 

 


당시 번화가 명동의 모습
오른쪽 모자쓴 남성뒤로 "빅터 SP 레코드

""(Victor) 세로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간판 위쪽에는 레코드 판 광고판이 걸려 있다.

 

노점상, 비녀를 비롯하여 면빗, 얼레빗, 참빗들이

 

 

엿장수 소년이커다란 엿목판을 걸치고 있다.

 

 

꽈배기 장수의 청년과 소년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의 붕괴사고 장면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하여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독뚜껑위에 자배기를 지게에 교묘하게

올려놓았다. 이 당시에는 자배기와

독뚜껑은 특히 여인들이 잘 깨뜨리는그릇이었다.

 

 

닭을 어리에 넣고 짊어지고 팔러 다니는 닭장수

 

 

옹기그릇 시장

 

 

누룩과 찰밥으로 지은 지에밥(술밥)을

햇볕에펼쳐 놓고말리고 있다.

 

복덕방 할아버지들

 

 

한강 용산 나룻터

 

 

 

참숫 팔러 가기

 

 

1900년 무렵의 조선 호랑이 사냥군들

 

 

여성들이 외출때에 쓰는 파라솔, 양산 대용

 

 

 

평양의 장터 길

 

 

일본의 조선 철도 기공식
당시 신작로가 전부였던 조선에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반도 곳곳에는 급속히 철도가 부설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는 그 길이는 총영장 5, 000km에 이르렀다.

이때문에
"일본은 한국 식민지 정책에서 남은 것이 없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쌀 티고르기

 

장터로 가는 길

 

 

결혼하는 날

 

 

 

 

소시장

 

 

쌀 찢고 있는 남성들

 

 

삽과 가래 삽?墟歐?

 

 

양반들의 장기두기, 한 팔이 넘는긴 담뱃대에 주목.

 

 

 

바닷가 어촌풍경

 

 

신행가는 신부

 

 

남대문밖 일군의 순찰

 

 

 

American Electric Trolley, 1903
남대문으로 노면전차가 지나고 있다.

 

 

주물상 괭가리, 징, 놋그릇, 갓, 촛대 등등...

 

 

당시의 광화문 정문

 

 

장터

 

 

북쩍 거리는 장터

 

 

한약방

 

 

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