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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화수분 아니다"... 홍남기, 내각 서열 1위 정 총리에 우회 '반기'

인주백작 2021. 1. 25. 07:08

"재정 화수분 아니다"... 홍남기, 내각 서열 1위 정 총리에 우회 '반기'

입력 2021.01.22 22:00 수정 2021.01.22 23:41

 

겉으로 협력 ...그러나 돈 많이 들면 안 하겠다는 뜻
정치권에 번번이 밀려 불만 고조...별명도 홍두사미
'예산맨' 출신으로 소신 표출하며 조직 달래기
정 총리, 내각 분열 우려에 추가 확전은 자제

 

정세균 국무총리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9일 서울 세종로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

석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시한 '자영업 손실보상제 법제화'를 논의하겠으나, 도한 재

정 지출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재정 지출에 소극적인 기재부를 두고 정 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

냐"라고 질타하자 '재정 상황을 살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꺼내 들며 우회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홍 부총리의 이날 발언을 놓고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지난해부터 이어진 당정 간 갈등이 내각 서열 1,2위 싸움으로 번

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홍 부총리가 정 총리의 지시를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총리실과 기재부 간 추가 확전

은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다.

 

"재정은 화수분 아니다" ...법제화 우회적 '제동'

홍 부총리는 22일 페이스북에 손실보상제 법제화와 관련해 "‘가보지 않은 길’이라 이에 대해 기재부도 충분한 검토가 필

요했다"고 적었다. 이어 "깊이 있게 고민하고 검토할 것"이라며 "영업제한 조치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제도화 방안이 무엇인지 부처 간, 당정 간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지혜를 모으겠다"고 덧붙였다.

 

표면적으로는 손실보상제 법제화에 나서라는 정 총리의 지시에 따르는듯 했지만, 홍 부총리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

다. 그는 같은 글에서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상황, 재원여건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정책 변수 중 하나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면서 "국가재정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쓰여지도록 하는 것 등 나라 곳간 지기 역할은 기

재부의 권리, 권한이 아니라 국민께서 요청하시는 준엄한 의무,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잘 알려진 채무 비율을 설명하는 데도 글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며 '속도 조절'을 요구했다. 홍 부총리는 "국내총생산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20년 당초 예산 편성 시 39.8%로 '40% 논쟁'이 제기되곤 했는데 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

에서 43.9%로 올랐고, 올해는 47.3%, 내년은 50%를 넘을 전망"이라며 "2024년에는 59% 전후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

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를 지켜보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 국가신용등급 평가기관들의 시각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적었다.

 

 

정세균 총리-홍남기 부총리 '말말말'

 

홍 부총리의 이번 글은 손실보상 법제화에 우회적으로 제동을 건 것으로도 풀이된다. "'가능한 한' 도움을 드리는 방향으

로 검토하겠다"는 홍 부총리 말은, 거꾸로 "(재정 여건상) 불가능하면 도움을 못 주겠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

문이다.

 

특히 홍 부총리는 재정을 과도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손실보상제는 그 특성상 막대한 재원을 필요

로 한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제안에 따라 손실보상제가 시행되면, 소요 예산은 매달 24조7,000억원씩 4개월간

98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 번 법제화가 이뤄지면 기준을 쉽게 바꿀 수 없어 장기 재정 운영에 막대한 영

향을 준다는 점도 문제다.

 

'홍두사미', 이번엔 달랐다...입장 차 어떻게 좁힐지 주목

홍 부총리가 여당도 아닌 정 총리에게 이례적으로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그동안 축적된 불만의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홍 부총리는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란 별명이 생길 정도로 지난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매번 정치권에 끌려다

니고 있다.

 

홍 부총리가 소득 하위 70%를 주장했던 재난지원금은 정 총리 중재를 거쳐 전 국민에게 지급됐고, 기재부가 추진한 주

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변경은 홍 부총리 사표 논란 속 '없던 일'이 됐다.

 

예산실 출신으로서 홍 부총리의 소신도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홍 부총리는 1986년 입직한 뒤 기획예산처 시절 예산총괄

과 서기관, 예산기준과장 등을 지낸 대표적인 '예산맨'이다. 정부 사업과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예산의 용처, 재정 건전

성 등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이재명 경기지사 등 대권 주자가 기재부에 맹폭을 날리고 있는 가운데 정 총리마저 기재부를 '콕' 찍어 비판하자

조직의 장으로서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었다.

 

다만 정 총리는 이날 홍 부총리의 발언에도 곧바로 질책하지 않았다. 홍 부총리가 기재부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했

다고 보고 일단 눈 감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추가 설전을 이어갔다가는 내각 내 분란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 남아있는 손실보상 법제화 과정이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원하는 수준의 손실보상과 재정당국이 용인하

는 예산 지출 간 간극이 클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 관계자는 "손실보상제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은 그대로"라며 "이제 막

관련 내용을 알아보고 있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세종=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