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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못 가니…한파 뚫고 산스장

인주백작 2021. 1. 10. 10:57

헬스장 못 가니…한파 뚫고 산스장

[중앙선데이]김홍준 기자 입력 2021.01.09 00:02 수정 2021.01.09 11:11

 

지난해 12월 8일 이후 실내암장이 한 달째 문을 닫자 한겨울에도 자연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 암벽 등반

지에서 특정 루트에 오르기 위해 암벽화로 대기 순서를 매기고 있는 모습. 김홍준 기자

 

딸은 발레학원에 갔다. 아빠는 산에 갔다. 정확히는 '산스장'을 찾았다. 지난 5일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강형진(49)씨 집에

서 벌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리두기 지침이 빚은 풍경이다.

2.5단계 속 실내체육시설 제한에 야외로
실내암장 막히자 영하에도 자연암벽장
사람 몰리자 암벽화 줄 세워 순번 대기
이용 뜸한 산기슭 배드민턴장도 열기

 

태권도와 발레·요가는 지난 4일부터 교습소·학원으로 인정돼 집합금지 예외가 된 실내체육시설이다. 강씨는 “이용하던

헬스장은 한 달째 문을 닫고 있어 몸이 근질근질해 산스장에 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밝

힌 우리나라 피트니스 클럽 수는 9900개. 지난해 12월 8일부터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한 달째 다시 폐쇄 상태

다.

#전국 야외운동기구 13만개…경기도 최다


강씨는 산스장에 도착하자 두 번 놀랐다. 생각보다 많은 이용자에 한 번, 그들이 내뿜는 열기에 한 번. 산스장은 ‘산+헬스

장’의 신조어. 이미 지난해 9월 초 서울과 수도권에 2.5단계가 시행되면서 떠오른 단어다. 근린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내

공원을 이용하면 ‘공스장(공원+헬스장)’이 된다.

800㎡쯤 되는 이 산스장에는 30여 명이 운동기구와 씨름하고 있었다. 60대 여성들은 옆파도타기·하늘걷기 운동기구를

탔고, 2030 남성들은 덤벨을 들었다.

이용객인 60대 A(고양시 화정동)씨는 경력 10년 이상의 산스장 베테랑이다. 그는 “새벽반(일출~오전 9시)에는 6070, 오

후반에는 2030(오전 11시 이후)이 주로 오는데, 요즘은 특히 20대 새 얼굴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피크 타임인

오전 11시~오후 2시에는 12월 이전보다 이용자가 50%는 늘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피트니스센터가 정부의 방역조치에 반발하며 오픈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서도 모든 실내체육시설에서 아동과 학생을 대상으로 9인 이하 운영이 가능해졌지만 관련 업계에서

는 주 이용층이 성인이기 때분에 사실상 운영 재개를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실내체육시설 집합금지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던 지난 1월 1일 경기도의 한 '산스장(산속 헬

스장)'에서 근처 주민들이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배태왕(23)·박재연(23·이상 고양시 행신동)씨는 이렇게 늘어난 20대 중 일부다. 그들 역시 “헬스클럽이 폐쇄되자 이곳을

찾았다”고 밝혔다. 유튜브에서는 이미 2030이 올린 ‘이 모든 게 무료!’ ‘밤에 갔다가 무서워서 근손실’ 등의 산스장 관련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북한산을 비롯한 큰 산에도 산스장이 많다. 대부분 1960~70년대 ○○체육회, ○○조기운동회의 간판을 걸고 문을 열었

다. 이 '전통의 북한산 산스장'을 이용한다는 오창현(49·도봉구 방학동)씨는 “실내 헬스클럽과 기구·시스템에서 비교하는

건 논외로 하고,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게 매력이 있다”고 전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해 9월 초 2.5단계 당시에도 산스장·공스장에 사람이 늘자 기존 이용자들이 이용 자제를 요

청하기도 했다. 경기도 안양의 대학생 김수민(22)씨는 “로컬(토박이 혹은 기존 이용자)로 보이는 사람이 ‘또 한명 늘었네.

못 보던 사람인데’라고 말하자 내가 무안해져서 바로 떠났다”고 말했다.

2.5단계 이전에도 헬스장 대신 산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산스장에서 만

난 강현욱(37)씨는 “실내에서 운동하는 게 불안해서 회원권을 중지하고 산스장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폐쇄된 산스장·공스장도 많다. 이은국 서울시 공원녹지정책과 주무관은 “25개 구청에 현장 조사를 통해 밀폐·밀집·밀접

등 ‘3밀’이 우려된다면 폐쇄 조치를 내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마포구만 해도 500여개 시설 중 143곳을 폐쇄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야외운동기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2018년 기

준 1만7773개, 전국 13만723개)는 시·군 차원에서 폐쇄·개방을 결정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스장(공원 헬스장)'이 코로나19로 인해 사용금지 상태다. 이 공원은 구청이 관리한다. 이연수 기자

 

# 야외운동시설, 불특정 다수가 이용

야외에서 대안을 찾는 '실내체육 종목'은 또 있다. 스포츠클라이밍과 배드민턴이다.
겨울은 통상 암벽 등반 휴식기다. 물론 겨울 등반가들도 있다. 이들은 “해가 비추고, 낮 최고 영상 5도 이상”이라는 조건

을 내건다. 2.5단계로 실내암장이 문을 닫자 아예 자연 암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5인 이상 집합 금지라, 많아야

3~4명만 연락을 취해 모인다.

 

지난 1월 8일부터 모든 실내체육시설에서 어린이와 학생에 한해 9인 이하의 집합이 가능해졌지만 주 이용자가 성인이라

하나마나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사진은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 지난해 12월 8일부터 한 달째 비어있는 경기도의 한

실내암장. 김홍준 기자

 

최저 영하 14도, 최고 영하 2도였던 지난 1월 2일 문순자씨가 경기도의 한 자연암장에서 등반을 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

19로 실내암장에서 운동을 못해, 처음으로 겨울 등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지난 2일 경기도 파주 감악산에 만난 문순자(50)씨는 “겨울 등반은 거의 하지 않는데, 조건을 ‘낮 최고 영상 2도’로 낮추

고 12월부터 등반 중”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몰리다 보니, 특정 코스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암벽화를 놓는 순서

대로 대기 순번을 표시하는데, 20켤레까지 늘어선 줄 때문에 2시간 가까이 기다릴 때도 있다.

야외 배드민턴장도 마찬가지다. 바람 영향 없고 냉·온방 잘되는 실내 배드민턴장에 밀렸던 산기슭 배드민턴장에 사람이

몰리고 있다. 지난 1일에도 은평뉴타운 뒤 배드민턴장에는 혼복조가 셔틀콕을 날리고 있었다. 역시 순번 표시는 신발이

나 배드민턴 라켓.

최영준 한림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트인 곳이라 실내체육시설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회원제도 아니고 불

특정 다수가 이용하다 보니 코로나19 감염 땐 속수무책”이라며 이용 시 주의를 당부했다.

북한산의 한 '산스장(산속 헬스장)'에서 이용자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북한산에는 오래된 산스장이 많다. 김홍준 기자

 

방역 당국은 실내체육시설 운영 여부를 재검토 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코로나 시대, 실내체육시설도 제

한적, 유동적 운영이 필요합니다’라는 글에는 1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현재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일부 실내체육시설 중엔 영업을 강행한 곳도 있다. 한 실내체육시설 관계자는 “한 달에 임대료를 포함해 700만원이 나가

는데, 정부 지원금으로만 버틸 수 없어 과태료 300만원을 감수하고 문을 열게 된 것”이라고 털어놨다.

형편은 좀 나아졌을까. 이 관계자는 “글쎄, 오픈 강행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불안하다고 등록 기간을 한 달 이상 연장해

달라는 분이 30%는 돼서…”라고 말했다. 엄동설한. 산스장과 암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알 수 없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