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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한장으로 버티는 나는 왜 간호사일까요"

인주백작 2020. 12. 19. 11:13

"생리대 한장으로 버티는 나는 왜 간호사일까요"

신은정  입력 2020.12.18. 04:00


추위 떨면서, 시간 없어 생리대 한 장으로 버티는데..
호캉스족 검사하면서 "당신이 즐긴 책임, 왜 내가.. 다 놓고 싶다" 울분

 

17일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중구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핫팩으로 추위를 견디고 있다. 연합뉴스


영하의 날씨에 좀처럼 꺾이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에 선별 검사소와 병원 등 현장에서 숨 가쁜 하루를 보내는 의료진.

끝이 보이지 않은 검사와 치료 인파는 이들을 지치게 한다. 붐비는 스키장, 해돋이 구경 숙소 만석이라는 뉴스는 이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든다.

여기 한 간호사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 날, 패드 한번 갈 시간 없이 바삐 움직였지만 일부 환

자들의 말과 행동에 간호사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호캉스’를 갔다가, 휘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다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검사를 받으러 왔다는 사람들, 방호복 안 습기 때문에 손발이 얼어붙는데도 패딩 점퍼로 무장하고는 “검사

가 늦다”며 호통치는 이들을 보면서 간호사는 “나이팅게일 선서 외칠 때 평생 의롭게 살라 해서 의롭게 살라 노력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수가 있냐”고 울부짖었다.

15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역 1번 출구 앞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생리가 시작됐지만 패드를 갈 시간이 없어 위생 팬티에 기저귀까지 동원해야 했던 일을 떠올리며 “퇴근 후 롱패딩

안에 감춘 붉은 자국을 집에 와서 보니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는 “순간을 즐기시고 난 이후의 일은 오롯이 제 책임”이라며 방역 수칙을 어기며 즐긴 시간에 대한 책임

은 스스로 지라고 쓴소리했다.


아래는 한 간호사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에 15일 올라온 것으로 알려져 여러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는 간호사의 글 전문이다.

너무 추워서 발가락이 얼어붙을 거 같은 오늘도 코로나 검사를 위해서 저는 레벨디를 입어야 하고 검사를 받으러 오신

분들을 검사해야겠죠.

패딩 입고서 왜 이렇게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하냐고 말하는 당신들에게는 레벨디 안 반팔을, 글러브 안에 얼어붙은 제

손은 보이지 않으시겠죠.

발이 정말 썩는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은 이내 기분을 아실런지 몰라요.

호텔 수영장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다가 동선 겹쳐서 무서우셔서 검사 받으시는 어머님, 호텔 휘트니스에서 운

동 하시다가 확진자랑 동선 겹치셔서 무서워 검사 받으러 온 분.

최근 한 스키장의 모습이라고 알려진 장면. YTN 보도 화면 캡처


참 오늘 당신들이 너무 너무 밉고 힘들덥디다. 진짜 너무 너무 싫더이다. 나이팅게일 선서 외칠 때 평생 의롭게 살라해서

의롭게 살라 노력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수가 있죠.

강제 차출되서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추위에 검사하는 나는 지난날 나의 진로 선택에 대해서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연합뉴스


생리가 터져버린 날 나는 너무 힘들었어요. 약을 억지로 입에 넣고 두꺼운 위생팬티에 가장 두꺼운 기저귀까지 깔고 검

사를 했습니다.

다리는 계속 후들거리는데 추위는 계속되고 생리는 계속 흐리고 정말 생리대 하나 갈 시간이 없어서 오늘 근무 중 그 패

드 한 장으로 버텼습니다.

당신들은 참 좋겠어요. 어차피 남의 일이니까요. 이 추운 날 수영장을 가도 호텔을 가도 술집에서 놀아도 어차피 내 일이

아니고 오늘은 내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니까, 즐기셔야죠, 네 참 부럽습니다.

당신이 그 순간을 즐기시고 난 이후의 일은 오롯이 제 책임이네요. 오늘의 나는 생리대 하나 갈 시간이 없어 결국 바지를

버려버렸습니다. 퇴근 후 롱패딩 안에 감춘 붉은 자국을 집에 와서 보니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네요.

데이트 하고 싶으시겠죠. 아이들과 추억 남기고 싶으시겠죠.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시고 싶으시겠죠. 그럼 그 시간

보내시고 책임도 본인 혼자 지셨으면 합니다.

내일도 기저귀를 차고 갈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여분의 생리대를 챙겨가겠죠. 평안하지 못할걸 알지만서도 그래도 평안

한 내일을 바라면서 오늘도 잠들 것 같습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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