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9년스페인독감으로약 5억 명에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서 최대 5,000만
캔자스주 병원에 입원한 병사들
제1차 세계 대전 최후반부터 종전 직후인 1918년 ~ 1919년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한 독감이다. 다만 전쟁에 말려든 각국들이 보도 검열로 이를 다루지 않는 가운데, 여기로부터 자유로운 스페인 언론
이 깊이 다루었기 때문에 본의아니게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되었다.[1]
기원에 있어서는 이견이 많으나 전쟁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있던 캠프에서 발병하였을 것으로 여겨지
며, "3일 열병"이란 이름처럼 짧은 증상기간 이후 단순한 감기 증상을 가지고 귀향한 병사들이 각지에 전파함에 따라 유
례없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기록에 의한 보고는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가 최초. 3월 8일 캔자스 퍽스톤 기지와 3월 11일 미군 각 부대에서도 발병
자가 발생했으니 출처를 따지면 스페인이 아니라 미국 독감이나 다름없는 셈. 고병원성으로 발전한 것은 같은 해 8월, 영국령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에서 발견된 것을 최초로 여긴다.
이 질병이 특히 무서운 것은 고대의 유행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질병이 냄새로 전파된다거나, 피의 균형을 맞추
면 병이 낫는다는등 현대로 보면 괴상한 생각을 하였고 방역이나 위생개선 등은 소수만 하였지만, 이미 20세기초 에는
세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었고 공중보건(상수도, 하수도, 위생 등)에 대한 체제가 어느 정도 되어있던 근대적인
인류였다. 그런데도 피해규모가 가히 어마어마하다.
당시 인구가 약 16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는 약 5억 명에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서 최대 5,000만(총 감염자의 3~9%, 전
체 인구의 1~3%)에 달한다고 추정된다. 사망자 수가 이렇게 들쭉날쭉한 이유는 진단할 겨를도 없이 야전에서 사망한 군
인들과 합병증 사망자(사실 이 독감 자체보다는 허약해진 몸에 합병증으로 세균성 폐렴이 발병해 폐에 물이 차 숨을 못
쉬어 익사한 사람이 대다수이다)를 포함하지 않거나 당시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사망자를 추정할 수도 없는 인도, 중국 같은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잡더라도 1차대전 사망자 수 900만명의 2배~5배가 넘는 수치다. 심지어 일
부 연구자는 스페인 독감의 유행이 1차대전의 종결을 앞당겼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사모아는 인구의 90%가 감염되어
30%가 사망했고, 이누이트 마을 몇 개도 몰살의 운명을 겪었다.
일제강점기의 한반도에서는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678만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2,113
명(44%)이 감염되어 13만9,128명(전체 감염자의 1.87%, 전체인구의 0.83%)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2] "무오년 독
감"이라고 불렸고, 충청남도에서 특히 기승을 부려 서산시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인 8만명이 독감에 걸렸고 예산군과 홍성군에서 수천명이 사망했다. 경성부에서는 268명이 죽었고, 그중 조선인은 119명[3]이었으니 과연 조선인의 사망률이 낮
긴 낮았던 듯. 이 자료는 당시 조선총독부 자료로 실제론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4]
아메리칸 사모아는 유일하게 스페인 독감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총독 존 마틴 포이어(John Martin
Poyer)가 라디오를 통해 듣고 내린 해외 여행객 입국금지 조치로 인해서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끔찍한 수의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그 수가 전체 감염자의 1.8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역설적
으로 매우 높은 감염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감염된 환자가 주변에 감염을 시키기도 전에 단시간내 바로 죽는다면(치사율은 강하지만) 도리어 감염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감염의 메커니즘을 생각해보자. 더구나 이러한 독감
이 독성이 더 심해진 돌연변이로 출현한다면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후 2005년 미군 병리학 연구소의 타우펜버그 박사의 연구를 통해서 스페인 독감의 정체는 조류독감인 것으로 추측되
었다.[5] 병사들이 머물던 캠프에서 기르던 식용 조류에서 발병했으며, 역시 식용 돼지(신체적 특성이 인간과 매우 유사
하다)를 통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병사들에게 쉽게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마
이클 워러비 미 아리조나대 교수팀은 1880년부터 1900년 사이 태어난 이들이 어린 시절 H1 바이러스에 별로 노출되지
않아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스페인독감의 H1N1형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최악의 사망자를 냈다는 연
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2014년 4월 28일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첨단 분자시계 방법론을 이용, 스페인독감의 원인균인 H1N1형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와 일반적인 H1N1 돼지
독감, 1918년부터 1957년 사이의 계절성 H1N1 바이러스의 유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스페인독감 원인 바이러스가 조류
에서 직접 유래했거나, 사람과 돼지독감 바이러스간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들어졌다는 기존 가설이 틀렸다는 결론을 얻
었다. 대신 발병 10여년 전 사람에 감염된 H1 바이러스가 조류독감 바이러스 유전자와 섞이면서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발전했다는 결론을 내놨다.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는 대개 유아와 노년층 사망률이 높은 데 반해 스페인독감은 20∼40대 사망률이 크게 높았다. 대
부분은 폐렴균에 의한 2차 세균감염이 원인이었다.
연구팀은 1880년부터 1900년 사이에 태어난 상당수가 어린 시절 H3N8 바이러스에 노출됐고, 그 결과 H1N1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별로 없다 보니 사망률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H3 바이러스 항체를 가진 당시 20대 후반 젊은이들이 H1
항원에 노출돼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 물론 H3N8 바이러스마저 겪어보지 않은 섬지역 등에선 스페인독감 치사율이
몇배나 높았다. H5N1(조류독감의 일종)은 젊은층, H7N9(조류독감의 일종)는 노년층 사망이 많은 것도 어린 시절 다른
HA 항원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워러비 교수는 "1918년 독감 대유행 이후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유래했고 치사율이 왜 그렇게 높았는지, 그리고 왜 청년
층 사망률이 높았는지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다"며 "이 연구 결과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의 H1N1가 이 스페인 독감의 변종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 스페인 독감에 비해서 독성은 약해진데다, 현
대인들의 영양상태가 그 당시보다는 나았기에 치사율은 낮았다. 그 대신에 전염성은 강해져서 일반 감기와 같이 연례행
사가 되었다.
현 상황에서 흑사병, 스페인 독감 다음으로 코로나 19가 역대 최악급의 전염병 사태가 될 거 같은데 과연 그 규모가 어느
선에서나
멈출지 -_-
출처 :https://namu.wiki/w/%EC%8A%A4%ED%8E%98%EC%9D%B8%20%EB%8F%85%EA%B0%90
'내가본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차, 세계 수소차 점유율 73.8% 압도적 1위..토요타 혼다 2, 3위(종합) (0) | 2020.12.15 |
---|---|
"기숙사서 당장 나가라니"..치료센터 동원 경기대 혼돈 (0) | 2020.12.15 |
"민경욱과 같은 당인게 부끄러"..국민의힘, '바이든 볼까' 걱정 (0) | 2020.12.15 |
대북전단금지법 반대하는 국민의힘..'국제이슈' 로 확산 (0) | 2020.12.15 |
[단독]혜민스님만 풀소유? 종교인 상위10% 연봉 5255만원 (0) | 2020.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