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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셈법.. 불산액 수출 허가했지만 '방아쇠' 그대로

인주백작 2019. 11. 18. 07:00

국민일보

일본의 셈법.. 불산액 수출 허가했지만 '방아쇠' 그대로

세종=이종선 기자 입력 2019.11.17. 17:15


19일 제네바서 한·일 2차 양자 협의

수출규제 4개월 만에 3개 품목 모두 허가

정부 “본질 그대로…WTO 분쟁서 큰 의미 없다”

일본 수출업체 타격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일본 정부가 오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한·일 2차 양자협의를 앞두고 액체 불화수소(불산액)의 수출을

승인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행한 이후 액체 불화수소 수출 승인은 처음이다.

 

일본은 한국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도 규제 대상 품목의 수출을 찔끔찔끔 허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에 돌입했을 때를 대비한 포석으로 분석한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의 수출을 모두 허가하면서도, 규제 자체를 유지해 한국과의 분쟁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

이다. 정부는 일본의 품목별 승인에도 “수출 제한적 상황이 발생한다는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며 예정대로 분쟁

해결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최근 화학소재 생산업체 ‘스텔라케미파’가 요청한 불산액

수출을 허가했다. 이번에 승인된 수출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지난 7월 수출규제 발표 직후 주문한 물량

가운데 일부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서류 보완을 이유로 반려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서는 일본의 수출 승인이 ‘WTO 소송전’을 의식한 행보라고 판단한다. 일본의 관련 법규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수출 심사는 최장 90일 걸린다. 서류 보완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시간을 끌더라도 특별한 이유 없이 수출 허가

를 미루면 WTO 협정에서 금지하는 ‘수출 통제’가 된다. 수출길을 조금씩 열어 WTO 협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으로 한국과의 분쟁해결 절차에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

 

여기에다 수출규제에 따른 일본 기업의 타격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스텔라케미파는 세계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업체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시행 이후 지난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로

각각 21%, 88% 급감했다.

 

이번 불산액 수출 승인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의 수출규제

넉 달 만에 수출길이 제한적으로나마 열렸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8월에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수출 2건과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 수출 1건, 9월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 1건을 각각 승인했었다.

 

이런 일본의 행보에는 수출규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불확실성’이라는 칼자

루를 계속 쥐고 있으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한국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하고 이런 입장을 미국에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오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한·일 2차 양자협의에서 두 나라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 측 수석대표로 나서는 정해관 산업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은 “WTO 양자협의는 1년 이상 걸리는 재판 절차에 들어

가기 전에 당사국끼리 조기 해결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절차”라며 “상대가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도 우리가 생각하는 절차대로 분쟁 절차를 이끌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품목별 수출 승인과

관련해서도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교역했던 것들을 정부가 일일이 허가해줘야 교역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수출 제한

적인 성격이 달라지지 않았다. WTO 분쟁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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