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시간]⑩ 정경심의 '빨간 인주' 녹취록
이지윤 입력 2020.04.09. 15:51 수정 2020.04.09. 16:19
"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법정에 울려 퍼진 정경심-동양대 관계자 통화
정경심 교수의 재판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점점 많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 때 공개되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어제(9일) 열린 10차 공판에서는 지난해 검찰 수사 당시 정경심 교수와 동양대 교원인사팀장 박 모 씨가
통화한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검찰은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고, 일부 내용은 "어감이 중요하다"라며 통화 녹음 파일을
법정에서 틀기도 했습니다. 박 씨는 어제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정경심은 왜 직인 얘기를 먼저 꺼냈을까?
지난해 9월 3일 KBS에서 동양대 표창장 의혹이 보도되자, 정 교수는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 딸 조민 씨가 받은 표창장
에 대해 해명을 합니다. 학생들이 영어 에세이를 쓰면 평가해줄 사람이 필요해 조민 씨가 자원봉사를 했다는 겁니다.
녹취록에 따르면 정 교수는 "그거를 우리 딸이 해준 거예요. Volunteer를, 봉사를 해준 거예요"라며, 당시 행정 업무를
담당했던 오 모 계장의 추서로 조민 씨가 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다음날인 9월 4일 다시 전화를 건 정 교수는 박 씨에게 동양대 위임 전결 규정을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정 교수는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표창장 발급 권한을 내게 위임해주신 걸로 해달라"는 요구를 한 적 있습니다.
재판에서 주목 받은 건 그 다음 대화입니다. 9월 5일 통화에서 정 교수는 박 씨에게 갑자기 총장 직인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이때는 표창장의 총장 직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입니다. 정 교수는 "총장님 직인 있잖아요"라고 말을
꺼내며, "그걸 상장에 찍을 때 뭐에다 찍어요, 어떻게 찍어요?" 라고 묻습니다. 박 씨는 "상장 용지를 가져다놓고 (직인
을) 상장에 찍게 되고, 우리가 직인을 사용하게 되면 직인대장에다가 뭐뭐를 한다라고 이제 옆에 그 기재하는 거죠"라
고 설명합니다.
'인주'로만 찍는 총장 직인
직인에 대해 물어보던 정 교수는 "(직인) 이미지를 갖다가 상장 위에 얹어서 찍을 가능성은 없죠?"라고 묻습니다. 공교
롭게도 정 교수가 스스로 언급한 이 방식은 검찰이 기소한 정 교수의 표창장 위조 방식과 거의 동일합니다. 정 교수는
아들 표창장 그림파일에서 총장 직인 부분을 컴퓨터로 오려내 딸의 표창장에 붙여넣는 방식으로 위조한 혐의로 기소
됐죠. 이해를 돕기 위해 법정에서 공개된 녹취록을 공개합니다.
교원인사팀장 박 씨는 동양대에서 발급되는 모든 상장에는 총장 직인을 '인주'로 찍는다고 설명합니다. 표창장 위조
혐의의 핵심, '인주'가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컬러프린터로 직인을 인쇄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문지르면 번지는'
인주를 이용해 직인을 찍는다는 설명입니다. 박 씨는 '여자들 바르는, 루주 같은 인주'라고 재차 강조합니다.
"우리 애가 받은 건 인주가 안 번지는데..."
인주로 직인을 찍는 게 맞는지 물어보는 정 교수에게 박 씨는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묻고, 잠시 침묵하던 정 교수는
"우리 집에 수료증 하나가 있는데 인주가 번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털어놓습니다. 컬러프린트로 인쇄된 수료증이
라는 겁니다.
이틀 뒤인 9월 7일 언론에 처음으로 '총장 직인'과 관련된 보도가 나오자, 정 교수는 박 씨에게 다시 전화를 겁니다.
박 씨에게 '디지털 직인파일'도 있다는 해명을 하는 겁니다. 인주로 찍지 않아도 되는, 컴퓨터 파일로 된 도장도 있
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박 씨는 단호하게 '디지털 직인파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왜 녹음했죠?"...."정경심 동의 받았는데요"
변호인들은 박 씨가 정 교수와의 통화를 녹음한 과정을 문제 삼았습니다. 박 씨는 앞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국회나 교육부에서 요구하는 자료제출과 관련해 정 교수의 구두 동의를 받기 위해 녹음했다
고 설명했습니다. 서면 동의를 받기엔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는 겁니다. 점점 사안이 민감해지니 답변해준 내용
이 사실과 다르게 보도되거나 할 경우엔 곤란해질 것 같아 녹음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처음 통화 당시 정 교수도
녹음에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변호인은 이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별도 지시를 받아서 의도적으로 녹음한 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특히 정 교수와
통화하기 전 최성해 전 총장과 미리 통화를 한 것은 아닌지, 또 정 교수와의 통화 내용을 최 전 총장에게 보고한 것은
아닌지도 물었습니다.
박 씨는 모두 "그런 적 없다"고 답했습니다. 녹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물어보자 재판부는 "피고인(정경심)은 동의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동의 여부만 6번을 계속 물어보시는데"라며 변호인을 제지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통화 녹음 동의 여부를 집요하게 물어봤을까요? 재판이 끝난 뒤 정 교수의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가 취재
진과 한 인터뷰를 보면 변호인단의 생각을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정경심 교수와 통화하기 이틀
전에 (박 씨가) 최성해 총장으로부터 어떤 얘기를 들었단 얘기도 있었다"며 "단순히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동의를 확
인할 목적으로 녹음을 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 하에서 대화를 녹음하지 않았나 라는 의심을 갖게 된
다"고 밝혔습니다. 또 "검찰이 녹음 내용을 과도하게 오해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게 많이 있지 않았나"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여전히 수사기관 이전부터 의도를 갖고 접근해 녹음하지 않았나 라는 의구심을 여전히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고도 했습니다.
녹취록 공개와 변호인의 악전고투
정 교수 측이 절대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던 녹취록이 박 씨의 증인신문과 함께 법정에서 공개되면서, 변호인단은 어제
재판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오후 재판에는 조민 씨를 KIST 인턴으로 추천한 장본인인 KIST 이 모 박사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다음 [법원의 시간]에서는 이 모 박사의 증언 내용을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easy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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