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통일·미군철수..'묻지마 총선 공약' 쏟아진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20.04.04. 12:01 수정 2020.04.04. 14:20
제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하상윤 기자
얼핏 보면 황당하게 느껴지는 주장이지만, 4.15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안보공약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계기로 비례 의석을 얻고자 총선에 뛰어든 35개 비례정당과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의
표심(票心) 잡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각 정당의 정책에 따르면, 우리공화당은 ‘김정은 정권 교체, 북한 민주화와
개혁개방 추진’을 내세웠다. 우리공화당은 “북한 민주화와 종북세력 척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한다”며 “기
업에 사회주의 약탈선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친박신당은 주적개념 정립과 한미일 군사동맹
체결을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형 핵공유시스템을 추진해 북한 핵위협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직업전문
부사관을 군병력의 50%까지 높이고 간부정년을 연장하며, 사관학교 1~2학년 과정을 통합해 전문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코리아당은 북진통일과 흡수통일 정책을 내걸었다. 휴전선과 개성, 장단, 문산, 철원, 금강산, 고성 일대를 통일수도의
강역으로 하고, 명칭을 ‘아사달’로 명명했다. 국가안보도청법을 제정해 국내외를 총망라한 도청기술을 개발하고, 전략
통합군부대와 전략자산 전문부대 신설 등을 내세웠다.
공화당은 자위적 핵무장과 거국적 핵안보 체제 구축,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에 대한 국민투표를 공약했다.
자유당은 모든 대북 지원 중단과 이슬람난민 유입 금지, 자유의새벽당은 한미동맹 재정립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4개 대대 추가 배치를 내걸었다.
국민의당은 사회진출장려금 2000만원 지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예비군 동원훈련 보상비를 2022년
까지 단계적으로 10만원 수준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미래한국당은 예비군 훈련 수당 인상을 약속했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모병제는 이번 총선공약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정의당은 2025년까지 병력을 40만명(간부
20만명, 병사 20만명)으로 감축하되 모병 10만명, 징집 10만명으로 구분하는 징모 혼합제를 공약했다. 대한민국당은
모병제 전환과 함께 월 300만원 이상 급료와 생명수당 지급을 내세웠다.
미래당은 2030년까지 모병제 전환을 완성한다는 목표 하에 21대 국회에서 ‘모병제 전환 특별상임위원회’ 설치를 공약
했다. 한국복지당은 모병제와 4개월 군사기본훈련을 제안했다.
정당들이 안보공약을 잇따라 내놓는 것은 정치적 측면에서의 ‘표심 잡기’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려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정책적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여기에 핵심 지지층의 목소리를 반영하면 득표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경쟁 정당보다 먼저 ‘프레임’을 장악해 이슈
몰이를 해야 선거전에서 유리하다는 셈범까지 더해지면, 이색적이거나 황당하기까지 한 안보공약이 등장하는 환경이
조성된다. 현실성보다 이슈 선점이 더 중요해지는 셈이다.
무시할 수 없는 군심(軍心)도 한몫 한다. 군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정부를 보호하거나 전복할 수 있는 군사
력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지금은 거대한 ‘표’의 힘을 정치권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8 국방백서’
에 따르면, 군병력 규모는 60만명에 달한다. 4인 가족 기준으로 계산하면 군 관련 표는 240만표에 달한다. 여기에 친구
나 연인 등이 더해지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비례 득표율을 높여야 하는 정당 입장에서 안보 관련 공약이 필수적인
이유다.
다수의 군소정당이 제안한 모병제 공약도 마찬가지다. 인구절벽에 따른 입영대상자 축소는 기존 징병제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50만명 수준의 군 병력을 유지하려면 징병제 유지가 불가피하다.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도 과제다. 단기간 내 실행이 어려운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모병제 관련 질문에 “첨단 과학장비 중심 군대로 전환해서 병력
을 줄이고 남북관계가 더 발전해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 간 군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건을 갖춰 모병제를 염두
에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선거철마다 안보 분야 공약이나 정책은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군에 보낸 사람들에게
모병제나 병사 월급 인상 등의 정책은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입법을 하는 정치권에서 핵심 지지층을 의
식한 공약을 내걸고, 선거가 끝난 후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안보의 중요성을 낮추는 부작용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
공기가 없으면 사람이 생존할 수 없는 것처럼, 안보가 없다면 국가도 국민도 없다. 각 정당들의 안보 정책이나 공약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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