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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복지국가를 호출하다

인주백작 2020. 3. 29. 10:45


코로나19, 복지국가를 호출하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입력 : 2020.03.28 13:24


3월 26일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설치된 스크린에 코로나19 극복 염원 메시지가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을 종식시킬 해결책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다. 하지만 백신 개발에는 최소 1년~1년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치료제 개발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로선 물리적 거리 두기의 철저한 시행만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 두기로 경제 활동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대책이 없다면 방역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의심 증상이 확연했음에도 일을 계속해야 했던 생수 배달 노동자의 사례처럼 생계 때문에 일을 중단하기 어려운

특수고용직 노동자, 학원·PC방 등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확산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적이었다는 해외의 평가에 만족할 때가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사회안전망, 복지국가

체계를 더 강력하게 갖출 때라고 진단했다.


“해고 막기 위한 일시 국유화도 필요” 


지난 3월 17일 국회는 방역체계 강화,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민생·고용안정 지원 등을 위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그 이틀 뒤 정부는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50조원 규모의 민생·금융 안전 패키지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24일 2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이를 두 배 확대해 100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

하겠다고 밝혔다. 건강한 기업의 도산을 막고, 형편이 어려운 기업은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돕겠다는 것이다. 


추경안과 금융지원 패키지 규모가 모두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는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위축시키는 외생적 충격으로 이 충격이 일시적일지 구조적일

지는 정책 대응에 상당히 의존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빠른 시간 안에 직접 타격을 입는 개인과 가계에 금전적 지

원을 해야 하는데 24일 추가로 나온 대책을 봐도 대부분 대기업 위주일 뿐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은 1차(비상경제회

의)에 포함된 25조원 외에 늘어난 게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체의 99%가 중소기업·소상공인인데 지원액은 오히려 대

기업·중견 기업의 3분 1 수준이라 완충 장치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금융지원 확대와 함께 최근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등 지자체가 잇따라 도입하는 긴급 생활비

지원을 전국 단위로 확대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다. 보편과 선별 지원 여부, 지급 기간에서 견해차가 있을 뿐

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소한의 생계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생각에서 재난구호금의 성격을 갖는 재정

집행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다만 지금은 일단 제일 급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기본소득과 같이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건 그다음 단계”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국채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무제한 달러 살포’를 결정했고, 영국도 우리 돈 500조원에 가까운

돈을 풀기로 했다. 재정적자를 생각하지 않고 현금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는, 이론에서만 보던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

지는 것이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금을 살포해서라도 죽어가는 내수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금

융정책이 기업 유동성에 집중된다면 재정정책은 자영업자나 중소상공인, 서민을 위한 복지 지원, 기업 고용보장에 대

한 인센티브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추경은 이를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는 회사채 매입, 유급 휴직자의 임금 보전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은 최소 6개월~1년 정도는 고용을

유지하는 의무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실 대기업의 경우 정책금융 지원보다 일시적 국유화를 고려할 만하다

고도 했다. 박 교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두산중공업에 정책금융을 소비해선 안 되고, 필요하면 오히려 정부가

일시적인 국유화를 해 해고를 막은 뒤 다시 민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경우도 정부의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일시적으로 국유화할 수 있다. 미국이 2009년 금융위기 당시 GM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최근 코로나19로 휘청거리는 이탈리아가 국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항공을

국유화했고, 스페인이 모든 민간병원을 한시적으로 국유화하기로 했다. 프랑스도 재정경제부 장관이 “프랑스의 대기

업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유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상병수당 도입,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대규모 신용 공급과 재난 구호금, 일시적 국유화가 단기 대책이라면, 중·장기적으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 뒤따라야

한다. 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병수당 도입을 강조했다. 상병수당은 아픈 사람이 질병으로 근로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급여와 비용에 대한 보전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감염증에 노출돼 일을 못 해도 생활비 보전이 있다면 굳이 감염 확산의 위험을 안고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김 교수는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를 진짜가 아니라고 평가하는 외국학자가 있을 정도로 상병수당 제도는 사회보장

체계 완성에서 필수적인 제도”라면서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실행할 제도로 초창기부터 말했는데 현금성 급여가

많아진다는 우려 때문에 실행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복지국가 담론에 다시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민영화와

복지 축소에 나선 나라들에서 위기가 더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복지의 중요성은 위기가 닥쳤

을 때 등장한다”며 “보수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복지 축소, 보건의료 체계의 민영화로 보장성을 낮추고 비용을 억제

하려 한 것이 피해 규모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물리적 거리 두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이 초기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돌봄 서비스를 비롯한 사회서비스 인력 확충과

사회안전망을 갖춰놓지 않으면 추후 감염자가 확산돼 유럽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부위원장은 이를 위해 무엇보다 ‘공공의료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던 대구 계명대 동산

병원, 경북 청도대남병원 등을 즉각 공공화해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감염병 전문병원도 시급히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4대 보험료를 유예 또는 면제하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가장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정 부위원장은

“고용보험·건강보험·산재보험은 모두 안전망이다”라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감면해도 그만큼 정부에서 대납하는 방

식이 되어야지 사회보험료를 인하하는 건 경총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기업에만 이익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오거나 요양시설에서 돌아온 노인들을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코로나19 같은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다. 고용이 줄어도 이를 상쇄할 수 있는 공공일자리를 돌봄 서비스를 중심으로 확충해야 한다. 정 부위원장은

“1930년대 미국 뉴딜정책도 결국 정부의 공공투자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라면서 “우리도 공공의료 확충과 돌봄

서비스를 강화해서 고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