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대 쉴러 교수는 주택시장 등락의 원인으로 '야성적 충동'을 지적했다.
정부의 잇단 고강도 부동산대책이 시장의 야성적 충동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대로 역할하기가 쉽지 않다.
’직감’(Gut Feelings)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주식시장과 주택시장 붕괴를 예측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가
연초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그는 미국 주식시장 과열 양상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직감으로 불리기도
하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끄집어냈다.
[안장원의 부동산노트]
노벨경제학상 로버트 쉴러 교수
미 주식시장 과열로 보고 원인으로
케인즈가 말한 '야성적 충동' 제기
국내 주택시장 이해에도 도움
“국가 역할은 현명한 부모”
쉴러 교수는 물가를 반영한 미국 주식 수익률이 역사적으로 시장이 두 차례 붕괴(1929년 대공황, 1999년)하기 직전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일부에서 원인으로 꼽는 저금리에 대해 과거 금리가 꼭 상관관계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며 야
성적 충동에 주목했다.
야성적 충동이란 말은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자본주의 수정이론을 만든 영국 경제학자 케인즈가 쓴 말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근간인 ‘합리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야성적
충동이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만 담고 있는 게 아니다. 기업가로서 도전적이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낙관주의적 에
너지를 뜻한다. 내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흔히 언급되는 소비자 신뢰 지수와 다르다.
야성적 충동이 강해지면 전통적인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직감에 의존하게 된다.
쉴러 교수는 직감을 강조했다가 결국 실패한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 등의 사례를 열거했다.
잭 웰치의 베스트셀러인 『잭 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의 원제목이 ‘직감으로부터’(from the gut)이기도 하다.
쉴러 교수는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 “야성적 충동이 전체 시장을 설명할 수 없지만 일부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쉴러 교수가 얘기한 야성적 충동은 지난해까지 6년 연속 상승 행진을 이어오며 달아오른 서울 주택시장을 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2017년 5월 현 정부가 들어선 뒤 매년 많은 전문가가 고개를 갸우뚱한 급등세가 반복해 나타났다.
역대 가장 센 강도의 규제에도 가격이 튀어 올랐다. 정부는 풍부한 유동성을 배경으로 한 투기로 보고, 반대편에선
지나친 규제가 불 지른 주택 공급 부족 불안감을 지적한다.
둘 다 근래 주택시장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가 ‘심리’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서울 아파트값 장기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쉴러 교수는 10여년 전 그보다 앞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교조지 애컬로프 교수와 함께
『야성적 충동』이란 책을 썼다.
그는 주택시장이 주기적인 부침을 겪는 이유로 야성적 충동을 꼽았다. 야성적 충동의 4가지 요소인 믿음, 공정성,
부패, 화폐착각, 그럴듯한 이야기가 주택시장에도 작용한다고 했다.
부동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고(믿음), 집값 격차 확대가 부당하기 때문에(공정성) 집을 살 경제력 여력이 부족한
사람의 대출을 확대해야 한다(부패). 물가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 숫자로만 비교해 집값이 많이 올라(화폐착각)
재미를 본 이야기들이 전영병처럼 퍼지며 집값이 오른다는 믿음을 더욱 굳힌다(이야기).
10여 년 전 붕괴한 미국 주택시장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지만 현재 서울 주택시장에도 울림이 있다. 공급이 부족하니
서울 아파트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고가 주택 상승 뒤 저가 주택이 격차를 좁힌다며 따라 오른다(갭 메우기), 곳곳에
서 부동산 '대박' 사례들과 대박을 터뜨리는 방법에 대한 얘기가 난무한다.
야성적 충동이 문제인 것은 호황뿐 아니라 붕괴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쉴러 교수는 『야성적 충동』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가는 자녀 양육지침서에서 말하는 부모 역할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너무 권위적이어도 안되고, 반대로 너무 관대해도 안 된다. 부모는 자녀가 야성적 충동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한계를 설정한다. 그 한계는 배우며 창조성을 개발하는 독립성을 허용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에게 자유를 줄 뿐 아니라 야성적 충동으로부터 보호하는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주택시장의 야성적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투기와 전쟁’을 선언하고 ‘(가격) 원상회복’을 목표로
고강도 규제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부에서 너무 지나쳐서 시장을 왜곡하고 가격 불안을 더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너무 권위적인 셈이다.
부모가 너무 권위적이면 자녀가 어떻게 될까. 쉴러 교수만이 알고 있는 게 아니다. “겉으로 복종하겠지만 10대가 되면
반항할 것이다.”
시장도 정부도 숨을 고르고 돌아볼 때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