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평등 해결 못 하면 대한민국은 망한다”
“부동산 불평등 해결 못 하면 대한민국은 망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ㆍ소득·자산 불평등의 주범은 부동산, 문재인 정부가 간과한 핵심문제
“시민사회가 2·4부동산대책의 본질을 확실히 공격 안 해서 그렇지 수도권 61만호를 2025년까지 짓겠다는 것 아닌가. 서
울수도권 시행하는 SH·LH에 엄청난 일거리가 간 것이다. 이런 게 어디 있나. 변창흠 장관이 LH·SH 사장을 했다. 이 사람
이 왜 이럴까. 이해관계가 반영 안 됐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말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일부가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지정 전 해당 지역에서 투기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
혹이 제기되면서 업무에서 전격 배제됐다. 3월 3일 오후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한 밭에 묘목들이
심겨 있는 곳을 점검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 김기남 기자
3월 3일 기자가 LH공사 직원들의 광명·시흥 100억대 투기 의혹을 어떻게 봐야 하냐고 묻자 “변창흠이 책임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사람들이 왜 바뀌는지 잘 모르겠다. 이 정부 들어 특히 더 심하다. 예전 같
으면 개혁적 지식인이 정권에 참여해서 하다가 안 되면 사표를 내고 나온다. 이 정부에 들어간 사람은 한 사람도 그런 사
람이 없다. 지식인이 뭣 때문에 권력에 참여하나. 평소 가진 소신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중과부적이면 나와야지. 자리
유지하려고 소신을 바꾸고 나라를 망치고….”
LH공사 직원 투기 의혹, 이번뿐이었을까
LH공사 직원들의 투기 의혹과 관련, 이번 정권에서만 발생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신도시 개발과
정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던 오래된 적폐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건 이후 LH공사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올렸다는 “LH 직
원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라는 글이 공분 대상이 됐다. 내부정보를 활용해 땅을 산 건지, 공부한 것을
토대로 부동산 투자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이나 검찰에 가서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위는 경제학
용어로 지대추구(rent-seeking)를 넘어선 범죄에 가깝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불법과 편법의 경계에 있는 행위가
재테크를 위한 당연한 노력쯤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LH 직원들뿐이었을까.
토마 피케티의 저작 <21세기 자본> 이후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피케티가 불평등의 국제비교를 위해 사용한 방식이 과세자료를 바탕으로 한 상위 1%와 10% 집중도를 계산하는 것이다.
즉 상위 0.1%, 1%, 10%가 한 사회의 부를 얼마만큼 가져가는가를 구해 그 사회의 불평등지수를 측정하는 것이다. 피케
티의 작업은 한때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한국사회는 어떨까.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 수치를 추산해낸 것은 김낙년 동국대 교수였다. 김 교수는 금융소득이 포함된
2010년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상위 0.1%가 4.46%의 소득을, 1%가 12.97%, 상위 10%가 48.05%를 가져간다는 추산치를
발표했다. 국제비교를 해보면 0.1%에서는 미국(7.52%)이 한국보다 높지만, 상위 10%가 가져가는 비중은 한국이 훨씬 높
다. 김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10%의 경계소득은 세후로 연 4433만원이다. 세전으로 따지면 연 6472만원이다. 정대영 송
현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고참 공무원, 교수나 교사, 은행원, 웬만한 대기업 직원 중 연봉이 6500만원 넘는
사람은 많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역시 정 소장의 말이다. “부자 증세를 이야기해도 한국은 실제 부자가 누군지 잘 모르는 나라다.
숨어 있는 부자가 너무 많다.” 무슨 말일까. 소득 불평등을 거론할 때 소득은 크게 임금소득과 자산소득으로 나뉜다. 여기
서 자산소득은 다시 금융이나 배당소득과 임대소득으로 나뉜다. 그런데 임대소득은 현재까지도 제대로 과세된 적이 없
다.
“한국은 10%가 소득 절반 가져가는 나라”
지난 2월 말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1000분위 자료를 공개한 용혜인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소득
상위 10%의 소득을 하위 10%의 소득으로 나눈 10분위 배율은 2014년부터 5년간 71.2배에서 64.0배로 줄었고, 지니계수
로 0.524에서 0.509로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고 있다는 의미일까. 통계청 가
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가계소득 지니계수는 5년 사이에 0.382에서 0.404로 악화됐다. 결국 시장소득 지니계수 악화
의 원인은 통합소득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소득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원인은 자산소득이다.” 용혜인 의원실의 장흥배
보좌관은 이렇게 덧붙였다. “임대소득은 신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탈루가 크고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만약 임
대소득, 부동산에서 오가는 돈이 김낙년 교수나 용혜인 의원의 1000분위 데이터에 반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서울 강남의 아파트단지 / 김기남 기자
“우리도 정부 데이터에서 이렇게 획기적인 자료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토지소유 통계는 노무현 정부 때 처음으로 발표
됐는데 그때는 1% 면적을 얼마 가지고 있네, 10%가 97%를 가지고 있네 하는 수준이었다. 그걸 100분위로 면적 가액기
준으로 다 잘랐다. 개인별·세대별로 어느 정도 땅을 가지고 있는지 자료가 나오게 된 것이다.” 지난 2월 말 기자를 만난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남 소장팀은 ‘획기적으로 개선된’ 정부 부동산데이터를 근거로 정책대안인 ‘기
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과 세제개편 연구’ 프로젝트를 지난 1월 완성했다. 논문 전반부에는 정책대안을 제시하기 전에
한국의 부동산 불평등 실태가 분석돼 있다. 국토부와 통계청이 제시하고 있는 2018년에서 2019년까지 최신데이터를 통
한 자료다.
대한민국 전체인구 중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은 전체의 33.4%이고 평균가액은 1억7000만원이며 평균소유면적은
2,699㎡다. 2018년 기준으로 전체인구 중 상위 0.1%가 가액의 12.3%, 면적의 19.1%를, 상위 1%가 가액의 33.8%, 면적의
53.6%를, 그리고 상위 10%가 가액의 79.1%, 면적의 96.5%를 가지고 있다. 토지를 기준으로 보면 대한민국 상위 10%가
대한민국의 땅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있다. 인구수로 계산했을 때 땅의 소유권자를 제
외한 나머지 구성원은 마찬가지로 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계산돼 통계가 극단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강수 교수는 “토지소유 불평등 문제를 볼 때는 세대를 기준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덧붙인다. 국토부 데이터를 세대기
준으로 재정렬해 10분위로 나눠보면 토지를 가장 많이 보유한 최상위 10%가 가액기준으로 68.7%, 상위 20%가 83.4%,
상위 30%가 91.5%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40%는 토지를 전혀 소유하지 않고 있고, 하위 50%는 토지의 0.9%만 소
유하고 있다.
앞서 대한민국의 소득 절반을 가져가는 상위 10%와 임대소득 등이 파악되지 않는 부동산의 70%를 갖고 있는 상위 10%
가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상당 부분 중복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동산 자산소득을 포함해 소득 불평등이 집계된다
면? 현재도 극심한 불평등을 보이는 것으로 돼 있는 한국의 임금·자산 불평등도가 더 가파르게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강남 투기로부터 시작된 ‘부동산의 덫’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지니계수인데, 막상 국민소득계정에서 보면 부동산 소득의 비중이 미미하다.
‘이 자료만 놓고 보면 부동산은 소득 불평등에 별 영향을 안 미치지 않나.’ 대표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자산 불평등은 이렇게 심한데 소득 불평등에 부동산은 영향을 못 미친다고. 아니 그 요인 중에서
부동산임대료조차 다 파악이 안 돼 있는데….” 전 교수의 말이다. 어쩌면 그게 자영업 문제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
도성장이 실패한 또 하나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제 도입만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구멍, 집값·임대료를 잡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남기업 소장에 따르면 북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에 비해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대표되는 한국의 농지개혁은 실패한 것으
로 봤던 1980~1990년대까지 이어진 진보관점은 틀렸다. “실제 조사를 해보니 한국전쟁 전에 농지개혁이 완료됐다. 대부
분 땅을 받았고 지주는 소멸됐다. 땅을 분배받은 농민은 현물로 150%를 5년에 나눠 면사무소에 내게 되고, 지주는 증권
으로 받았는데 전쟁으로 지주계급은 소멸의 길로 간 것이다.” 남 소장에 따르면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개발도상국에
서 유례없는, 거의 유일했던 한국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비밀이다.
“농지개혁 덕분에 평탄한 자영농이 생겨났고, 교육열에 따라 인적자본도 축적이 될 수 있었다. 몰락한 지주들도 이제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의 길을 걸어야 했고.” ‘지주의 나라’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이 96% ‘자영농의 나라’로 변한 것
이 성장의 비결이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나라가 다시 부동산의 덫에 걸린 것은 1960년대 후반 강남 개발을 시작하면서부
터라는 지적이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국토부 부동산 실거래 자료의 2016년과 2019년 서울의 아파트 매매계약 각 5만여건을 내려받아
상승분을 계산했다. 이 기간 서울에서 가격이 가장 많이 올라간 아파트는 18억1550만원이 올랐다. 평균으로는 3억1773
만원이 상승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상승한 아파트 1·2·3위는 반포대로 래미안퍼스티지, 압구정 현대, 반포 주공의 순으로
특정지역에 몰려 있다. 강 교수는 “한국의 중위 근로소득이 2500만원 미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불로소
득”이라고 말했다. 정대영 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은
이상하게도 주식이나 예금, 금 등에 비해 부동산 쪽으로 돈이 흘러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특혜가 너무 많다. 쉬운 예로,
실거래가 20억짜리 부동산이 있으면 공직자재산등록을 할 때 순자산으로 10억이 안 된다. 주식이나 예금은 20억이 다
등재된다. 바보가 아니라면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다.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 대출받기도 쉽고, 내 재산이 적게
평가돼 세금도 덜 내게 되니까.”
강 교수는 한국에서 부동산 불평등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되는 위험수위까지 왔다고 말한다. “해적질을 하면 가장
돈을 많이 번다, 그런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해적이 된다. 부동산 투기를 해 돈을 많이 버는 나
라는 인재들이 투기꾼이 된다. 기업도 투기 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번다. 역사적으로 그런 나라들은 중장기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정부가 기업의 혁신을 도울 수 있는 가장 큰 정책은 역설적으로 혁신을 안 하면 돈을 못 벌게 하면 된다. 나는 부동산 투
기로 돈을 못 벌게 하면 혁신을 더 잘할 것이고, 인재가 혁신 분야로 갈 것이라고 본다. 부동산 투기를 지금처럼 내버려
두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 어떤 해법을 내와야 하는지 전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