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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을 먹는 노인과 젊은 여인

인주백작 2020. 11. 24. 06:12

젖을 먹는 노인과 젊은 여인


그림이야기
화가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 ∼ 1640)가
그린 이 그림에서 늙은 남자는 혼신을 다해 젊은 여인의
젖을 빨고 있는데 여자 뒤로 보이는 쇠창살로 보아 이곳은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감옥임을 알 수 있고, 창살 뒤로는
감방을 지키는 간수들이 놀란 표정으로
이 두 사람의 행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림 속 남녀는 아버지와 딸 사이라고 합니다.
늙은 남자는 시몬(Cimon)이라는 로마인으로 반국가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어 체포된 뒤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확정받게 되는데
사형 집행이 이루어 질 때까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아주
가혹한 형벌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음식물 공급이 금지된 감방에서 노인은 서서히 굶어 죽어갔습니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한 딸은 해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감옥으로
아버지의 면회를 갔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딸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는 규정에 따라 물을 포함한 어떠한
먹을거리도 갖고 있지 않다는 몸수색을 받고서야
면회를 하락 받게 되었습니다.

막상 면회가 이루어져 아버지를 보는 순간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한 채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느다란 숨을 몰아 쉬는 아버지 앞에서 딸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고 불은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렸다고 합니다.

그 뒤로 페로(Pero)는 그렇게 감옥으로 아버지를 면회 가서
자신의 젖을 물려 아버지의 목숨을 연장시키게 되는데 오래지 않아
간수들에게 이런 사실이 발각되었고 곧 바로
형무소 소장에게 보고되었으며 마침내 국왕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벌을 내리기보다는 이 효성스러운
딸의 행위를 가상히 여겨 마침내 시몬을 풀어주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하던 노인은 효성스런 딸의 젖을 먹고
극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었으며 아버지에게 젖을 먹인
딸 페로의 효심은 마침내 아버지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로마에서도 효성에 대한 인륜적 가치를 엄청 중요하게 생각했나봅니다.

이 이야기는 소재가 특이하고 스토리가 흥미로운 만큼 수많은
화가들에 의하여 작품화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꾸며져서 "푸에르토 리코”의 독립투사와 그의 딸의 일화로 각색되어
그림 속의 부녀(父女)는 ‘푸에르토 리코’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우상화되었으며 그 작품은 국가적 성화(聖畵)처럼
국보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이야기와 ‘푸에르토 리코’의 역사와는 연대로 보거나 많은
화가들의 작품으로 보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가끔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하거나 오해하고 남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나면 사실은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시몬과 페로’ 라는 이 그림을 보면서도 선입견이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을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AD 30년경 고대 로마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가 썼다는 작품
“고대 로마의 기억과 격언에 관한 9권의 책들(Nine books of
memorable acts and saying of the ancient Romans)”에
전해지는 로마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책에는 위 그림처럼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간수들이 창문을 통해
훔쳐보는 장면이 서술되어 있고, 16-18세기에 들어와서 화가들은
이처럼 흥미로운 스토리를 놓치지 않고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많은 회화와 조각 작품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제일 위 그림은 화가이며 학자로서 이름을 떨쳤던
페테르 폴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 ∼ 1640) 의 작품인데
루벤스는 이 주제를 좋아해서 여러 번 같은 주제로
다른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루벤스는 지금 벨기에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플랑드르에서 태어나
모국을 중심으로 한 북부 유럽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 유럽의
미술전통을 통합하여 빛나는 색채와 생동하는 에너지로 가득 찬
그림들을 그린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 화가입니다.
여기에 보여드리는 그림들은 각각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
탄생한 같은 주제의 작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