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우리가 이기는 것 봤나"..잇단 사건에서 드러난 한계[수사권 조정, 혼돈의 3개월]
경찰 "우리가 이기는 것 봤나"..잇단 사건에서 드러난 한계[수사권 조정, 혼돈의 3개월]
입력 2021. 03. 31. 11:01
'구미 여아 사망 사건', 친모 밝히는 수준서 수사 종료
'이용구 택시기사 폭행', '정인이 사건' 등도 부실수사
LH 투기 수사 명운 달렸다면서..압색 위치조차 틀려
[망고]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검찰에 쏠린 수사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시행한 ‘검경 수사권 조정’이 3개월을
지나고 있다. 1차 수사종결권을 갖는 등 권한이 커진 경찰의 경우 초반 성적표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책임
수사’를 내세우며 자신감을 피력했지만, 주요 사건 수사에서 미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수사권 조정이 안착하기도
전에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용구 사건’ ‘정인이 사건’ 등 경찰 수사역량에 불신감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는 ‘구미 여아 사망 사건’이 꼽힌다. 이 사건은 설 연휴 전날이었던 지난 2월 10
일 3세 여아가 미라 상태로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유전자 검사 결과 외조모로 알려진 인물이 사실은 친모로 밝혀지면서
세간에 충격을 줬다.
경찰은 지난 17일 구미 여아 사망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에 넘겼다. 경찰이 낸 성과는 DNA 검사 결과 숨진 아이
의 친모가 외조모로 알려졌던 석모(48) 씨였다는 것 말곤 없다.
경찰은 석씨가 친모로 밝혀진 이후에도 석씨의 자백에만 수사를 의존했다. 하지만 여러 의혹에 대해 석씨가 완강히 부인
하자 결국 수사 진척을 보지 못한 채 송치 날짜에 쫓겨 흐지부지 수사를 종결하고 말았다.
경찰의 부실 수사를 보여주는 사건은 이전에도 수두룩하다. 최근에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와 16개
월 입양아를 잔혹하게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정인이 사건’이 대표적이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이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에 대해 단순 폭행으로 내사 수사를 종결했다. 운행 중인 택시기사를
폭행했다면 특수폭행으로 가중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후 검찰이 특수폭행을 입증할 만한 블랙박스 영상을 찾아내면서
경찰의 부실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이 해당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덮으려 했다는 ‘봐주기 수사’ 논란까지 일었
다.
김창룡 경찰청장(왼쪽)이 지난 1월 생후 16개월 정인이(오른쪽)에 대한 아동학대 사망 사건 관련 초기 부실 수사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SBS 방송화면 캡처]
정인이 사건의 경우 경찰은 양부모에 의해 16개월 영아가 사망할 때까지 세 차례나 신고를 받았으나, 증거가 없다는 이
유로 내사종결하거나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결국 정인이는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숨
졌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정인의 사인을 훼손된 췌장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부실 수사는 강력범죄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해 유죄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
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지만, 보완수사를 한다해도 경찰이 추가적인 성과를 거둘 거란 시각에 회의적
이다.
지속된 경찰의 부실 수사에 일각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들끓
고 있다. 경찰이 이런 여론을 의식해 수사 단계별로 공정성을 기하는 제도적 장치를 내실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회의적 시
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 블라인드엔 아직도 “수사권 조정, 의미없는 행위”
이런 가운데 현재 경찰이 수사 중인 ‘LH 부동산 불법 투기 의혹 사건’이 검경 수사권 조정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의견
도 있다. 경찰은 이 사건에 만큼은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LH 직원의 조롱글이 올라온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사무실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는 등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도 43개 검찰청에 전담수사팀을 편성하고 500명 이상의 검사와 수
사관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경찰에만 의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경찰의 패배주의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우리가 언제 이기는 거 봤냐”, “의미 없는 행
위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라며 일선 경찰들의 자신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1월 1일부터 시행 중안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중대
범죄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나머지는 경찰이 수사권을 전임하고, 1차 수사종결권을 갖는 등 경찰의 권한이 강해졌
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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