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통째로"..공무원 극단선택, 그뒤엔 민원 쓰나미
"아파트 단지 통째로"..공무원 극단선택, 그뒤엔 민원 쓰나미
최은경 입력 2021. 03. 13. 06:01 수정 2021. 03. 13. 08:03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한 자치구 주민센터에서 민원인이 상담하던 중 언쟁을 하다 담당 공무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해당
직원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를 받았으며, 이 자치구는 사건 발생 이후 악성민원 피해 사후관리와 예방 시스템을 강
화했다.
악성민원 피해는 공무원 조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다. 행정안전부의 ‘2019년 중앙부처 및 지자체 민원인 위법 행
위 현황’에 따르면 민원공무원에게 위해를 가한 사례는 3만8054건으로 전년보다 10%가량 늘었다. 폭언·욕설이 3만2312
건, 협박 2353건, 폭행 323건, 성희롱 216건, 기물 파손 32건 등이다.
서울 중구 서울시청. 뉴스1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구체적 요구사항 없이 민원실에 찾아와 욕설을 퍼붓고, 죽겠다고 소리치는 민원인이나 규정
상 들어주기 어려운 민원을 계속 요구하며 고함을 지르는 민원인 등이 많다”며 “이런 민원인은 뉴스를 즐겨보기 때문에
구체적 사례를 밝히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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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전체가 민원 넣기도”
서울시 관계자는 “극한 예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아파트 주민 전체가 교통개선 민원을 넣는다. 하루 수천 건이 들
어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주에서 술 취해 볼펜으로 주민센터 직원을 찌른 민원인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올
해 초 부산에서는 집 앞 쓰레기를 치워달라며 구청 공무원을 흉기로 위협한 남성이 구속됐다.
연합뉴스
극단적 위해 사례로 분류되지 않더라도 민원은 공무원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난 3일에는 구청에서 불법 주정차 과태
료 이의신청 민원 업무를 맡은 공무원이 투신한 지 두 달 만에 한강 잠실대교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와 관련해 전국공무원노조는 성명을 내 “고인이 1년 동안 6000건, 하루 평균 25건의 민원을 담당한 것으로 밝혀졌
다”며 “민원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말과 폭언, 협박을 이겨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순직 처리를 촉구했다.
이어 “고인의 죽음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최근 2030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5%가 ‘악성민원 때문
에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는 충격적 답변을 했다”면서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민원 건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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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시민 권리지만 악용이 문제”
서울시 시민봉사담당관에 따르면 서울시에 접수된 전체 민원 건수는 2016년 132만2734건에서 2020년 235만1220건으
로 100만 건 넘게 늘었다. 이 건수는 악성민원을 따로 분류한 것은 아니며 등록·인허가 민원, 건의·질의, 현장민원 등을 모
두 더한 수치다. 현장민원은 주차 단속, 도로 파손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235만여건 가운데 서울시가 처리한 민원이 28.8%, 자치구 민원이 71.2%다. 분야별로는 주정차 단속과 차량기지
이전 등 교통 분야가 64.7%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환경·안전(20%), 주택·건설(4.3%), 복지·문화·경제(4.1%) 분야 순이
었다.
신도시 개발, 정보공개 청구 등으로 행정수요는 늘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원이 늘면 할
일이 많아지고 부담이 커진다. 민원을 처리하느라 본 업무를 못하는 직원들도 있다”며 “단순민원은 당연히 처리해야 할
일이고 불편사항이 있으면 민원을 내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지만 일부 그것을 악용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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